“저희 가문 하녀들도 실력이 꽤 출중합니다. 에디트 양의 기준에 차고도 넘칠 겁니다.”
“루드윅 공작 부인께서는 시집오실 때 하녀 한 명도 안 데리고 오셨나요?”
“그건…….”
여러모로 리겔호프 백작이 유리한 대화였다.
이런 대화 끝에 원작에서는 소피아를 에디트와 함께 들여보낼 수 있었을 테고.
리겔호프 백작은 협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다시 인자하고 애틋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얘야, 에디트. 루드윅 공작께서는 네가 몸종 몇 명 데리고 오는 것도 싫으신 모양이구나. 어찌하면 좋으냐.”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연기에 소름이 돋았지만 정신 바짝 차려야 했다. 이 자리에서의 결정이 내 목숨을 좌우할 것이다.
“저는…… 하녀를 안 데리고 와도 좋아요.”
“응……? 에, 에디트……?”
“아무렴 공작가의 하녀가 우리 가문의 하녀만 못하겠어요? 저 때문에 정든 백작가를 떠나는 하녀가 생기는 걸 원치도 않고요. 그러니 저한테 하녀 딸려 보내실 생각은 안 하셔도 좋아요, 아버지.”
공작은 물론이거니와 공작의 두 아들 역시 예리한 눈초리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쿠션을 깐 다음 다른 조건을 요구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는 결백합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요청은 부디 잊어주세요, 공작 각하. 아직도 철없는 저를 시집보내려니 아버지께서 너무 걱정이 크신 모양이에요.”
“아니, 뭐, 한 명 정도는…….”
루드윅 공작이 큰일 날 소리를 한다. 여기서 당신이 마음 약해져서 어쩌자는 소리야!
“루드윅 공작가의 며느리로서, 앞으로는 응석받이 같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요. 저는 혼자 오겠습니다. 공작 부인께서 어련히 실력 좋은 하녀를 붙여주시리라 믿어요.”
나는 최대한 선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에디트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어서 순해 보이는 표정 짓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공작가 사람들은 뭔가 찜찜하기는 해도 자신들의 뜻대로 되었으니 고개를 끄덕였고, 리겔호프 백작의 표정만 딱딱해졌다.
그리고 돌아오는 마차에 타서 루드윅 공작가의 대문을 벗어나자마자 리겔호프 백작이 버럭 소리쳤다.
“너, 미쳤느냐!”
다짜고짜 따귀부터 때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금부터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해야 했다.
“아버지! 아까 루드윅 공작 표정 못 보셨어요?”
“……뭐?”
“그는 이미 아버지께서 어떤 의도로 하녀들을 딸려 보내겠다 하신 건지 눈치채고 있었어요. 그렇게 티 나게 요구하시면 어떻게 해요?”
그 말에 리겔호프 백작의 눈꺼풀이 파들파들 떨렸다.
여태 제가 시키는 짓이나 잘할 뿐이었던 딸이 이렇게 고개 빳빳이 들고 할 말 다 하는 게 낯설 법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벌써 의심을 사버린다면 하녀를 데리고 들어간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주변에는 감시의 눈길이 더 많아질 텐데요. 그래서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해요, 아버지.”
“그거야……!”
“이 결혼의 일차적인 목적이 뭐였는지 잊으셨나요? 그들의 의심을 불식시키는 거였잖아요. 우선은 그들이 우리에게 세운 경계의 날을 무디게 만들어야 해요.”
어떠냐, 대학 때부터 온갖 프레젠테이션에 단련된 한반도 마케팅부 직원의 말빨이!
아니나 다를까, 흉흉했던 백작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럼…… 앞으로 어쩔 셈이냐?”
“일단은 저 혼자 입성해야죠. 그리고 그들의 의심이 누그러졌을 때, 제가 향수병이든 뭐든 핑계를 대서 친정의 하녀를 ‘잠시만’ 데려오겠다고 할게요. 그것까지 막지는 않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