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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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가 진다는 게 말이 되냐고!’

리제는, 아니, 원작자 K는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이런 결과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랬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K는 재미로 쓴 첫 번째 글이 대박 난 작가였다.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해서 늘 칭찬만 받고 자랐던 K는 연이은 취업 실패로 우울해하고 있었는데, 현실을 잊기 위해 로맨스 소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울한 현실을 전부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동경을 담아 ‘리제 싱클레어’라는 여주인공을 창조했고, 자신의 모든 욕망을 담아 ‘클리프 루드윅’이라는 남주인공을 창조해 냈다.

거기다 로판의 클리셰들을 적절히 뒤섞어서 쓴 첫 작품이 바로 <집착은 사절합니다>였다.

누가 보고 웃으면 어쩌나 싶었던 글은 나날이 보는 사람 수가 많아지더니 곧이어 메이저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가 들어왔다.

그리고 얼결에 출판한 작품은 런칭하자마자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순식간에 팬덤이 생겼고, 소설 커뮤니티나 카페에는 K의 팬이라는 독자들이 그를 찬양했다.

덕분에 K는 단숨에 자신감을 되찾았다. 조금 과할 정도로…….

‘하긴, 내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고 아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저 그런 애들이 쓴 거랑은 다르지.’

빠르게 ‘성공한 작가’의 역할에 심취한 K는 매일 쏟아지는 작품들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살피며 독자를 가장해 악플을 달았다.

-전체적으로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내용이 유치한 듯. 작가님이 고민 없이 쓴 티가 나네요.

-이거, <ㅈㅊ은 ㅅㅈ합니다>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너무 많네요. 작가님 양심 팔아먹으셨나?

-이런 걸 왜 돈 주고 읽지? 저는 무료분까지만 보고 하차합니다. 제 코인은 소중하니까요.

처음에는 뭣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지라도 밝혔지만, 나중에는 악플을 위한 악플을 쓴 수준이었다.

그러나 K는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난 독자들의 돈을 아껴주는 거야. 그런 쓰레기 같은 글 읽는 시간에 좀 더 좋은 작품 읽으라고.’

그런 한편, 인터넷 상에서 알게 된 작가들과 작가 연합을 만들었다.

물론 그 연합에서 K보다 잘나가는 작가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K는 연합원들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한 달에 한 번씩 회원들의 작품을 평가했다.

“사용하는 어휘 수가 너무 적은 듯하네요. 책을 좀 더 많이 읽으세요.”

“상황이 너무 작위적인 거 아닌가요? 아무리 막장이라지만 개연성이 이 정도로 파탄 나면 욕먹어요.”

“아직 글 쓰실 실력이 아닌 듯.”

K의 비평은 신랄했지만 작가 연합의 회원들은 그가 따끔한 충고를 해줘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랬으니 K가 겸손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던 중, 사건이 발생했다.

작가 연합의 회원 중 하나가 쓴 작품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것이었다. <집·사절>을 뛰어넘는 성공이었다.

그러자 연합 회원들은 그 회원에게 축하를 전하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평가를 부탁했다.

‘뭐야? 프로모션 잘 받은 덕분에 히트한 거면서, 건방지네.’

K는 자신의 자리를 낚아채 간 그 회원에게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작품의 댓글란에 악플을 남기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동생의 아이디를 돌려가며 온갖 악의적인 해석을 달아 작가를 비난했고, 종국에는 작가에게 절필하라는 악플까지 남겼다.

그러나 꼬리가 길었던 건지, 도가 지나쳤던 건지, 그 작가는 K를 고소했다.

그리고 법원에서 K를 마주한 그 작가는 K가 작가 연합의 회장이라는 것을 알고 분노했고 그 사실을 작가 연합과 온갖 커뮤니티에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