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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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는 왜 갑자기 이러는 걸까? 정말 내가 2단계 예외 조건을 충족시킨 것과 관계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클리프가 딴소리를 했다.

“아! 혹시 사비나라는 하녀를 아십니까?”

“네? 누구요?”

“사비나.”

“아뇨.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어떻게 생겼나요?”

“……금발과 밤색 머리칼이 섞인, 살짝 마른 하녀입니다. 주로 세탁물을 운반했죠.”

“으음…… 죄송해요. 제 방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세탁물은 전부 안나나 소피아가 관리했던 터라, 저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그런데 그 하녀가 왜요? 무슨 일 있나요?”

내가 묻자 클리프가 살짝 웃었다. 뭔가 영 꺼림칙한 느낌이었다.

“그렇군요. 알고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네?”

“아아, 그 아이의 평판이 좋으면 승진을 시킬까 했거든요.”

“그랬군요. 죄송해요. 아직 저택 하녀들 이름을 다 알지는 못해서.”

“뭐, 괜찮습니다.”

클리프는 묘한 미소를 띠며 차를 마저 마셨다.

“어쨌든 제가 드린 말씀, 잊지 말고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잘 되면 당신도 좋고 저도 좋을 일 아닙니까?”

“하아…… 과연 그럴까요?”

나는 그다지 기대되지 않았다. 괜히 리제와 함께했던 추억을 자극하는 꼴이 되지나 않을지 걱정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모가지가 날아가는 에피소드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수밖에.

* * *

“저것 좀 봐요, 킬리언! 너무 귀여워요!”

오랜만에 함께 외출한 리제는 르벨마리 거리에 있는 흔한 잡화상의 쇼윈도를 가리키며 웃었다.

쇼윈도에는 외국에서 수입했다는 오르골이며 유리 공예품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귀엽네. 사줄까?”

킬리언의 시각으로는 비싸고 예쁜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들이었지만, 리제가 예쁘고 귀엽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것뿐이었다.

“아니에요. 그냥 귀여워서 말해 본 거예요.”

그러나 킬리언은 리제를 데리고 들어가 그녀가 가리킨 것들을 사주었다.

세계 3대 장인 중 한 명이 만들었다는 오르골은 20만 세나였고, 유리의 유명 산지에서 수입했다는 토끼 모양 유리 장식은 1만8천 세나였다.

“정말 괜찮은데…….”

킬리언이 값을 치르는 내내 난처해했던 리제는 선물을 받고 또 눈썹을 팔자로 늘어트렸다.

“그냥 내가 사주고 싶으니까 사준 거야. 이런 걸 사줄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네? 킬리언, 어디 가요?”

“조만간 작위가 내려지면 영지로 내려가야지.”

“어, 언제 가려고 하는데요?”

“글쎄…… 아마 내년 초?”

자신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리제의 모습에 킬리언은 작게 웃었다.

“에디트도 같이요?”

그래서 그 질문이 좀 이상했다.

당연한 걸 묻는 것도 그랬고, 그럴 리 없다는 듯한 뉘앙스도 그랬다.

“당연한 거 아닌가? 물론 에디트는 수도의 생활을 그리워하겠지만, 영주의 아내가 따라가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

“그, 그렇죠…….”

“왜 그래?”

“아쉬워서 그렇죠, 뭐. 저한테는 몇 없는 친구니까…….”

이상했던 분위기는 금방 흩어졌다.

킬리언은 리제에게 또래의 친구가 별로 없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아쉬워할 만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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