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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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리겔호프 백작, 이 양반이 보통 교활한 게 아니거든. 어쩌면 랭스턴 대공 쪽으로 붙을 것 같다는 소문을 일부러 낸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런 소문을 내서 루드윅 공작을 안달 나게 한 다음, 자신의 결백을 믿어달라면서 결혼 동맹을 제안한 거지. 그렇게 간단하게 공작가의 사돈 자리를 차지하다니, 대단하지 않냐?”

“뭐라고? 그런 비열한 짓을!”

데미안은 쿡쿡거리며 다시 차를 마셨다. 하지만 씩씩대던 레일라의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무슨 좋은 소식이야? 리겔호프 백작가가 루드윅 공작가의 사돈이 된 건 달라지지 않는 거잖아.”

“어휴, 우리 순진한 레일라. 공작은 아무나 되는 건 줄 알아? 루드윅 공작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말 빙빙 돌리지 말고 얼른 말해줘!”

데미안은 씩 웃으며 레일라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물론 리겔호프 백작이 인질로 넘긴 딸을 위해 얌전히 몸을 사린다면, 아마 루드윅 공작가의 사돈 자리를 놓치지 않겠지.”

“뭐? 지금 나 놀려?”

“그런데 리겔호프 백작은 욕심이 많거든. 전부터 루드윅 공작을 시샘했을 정도로. 결국 그 인간은 올해가 가기 전에 일을 벌일 테고, 에디트 리겔호프는 눈 가리기용으로나 쓰다가 버려질 패일 뿐이란 말이야.”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교계의 모두가 리겔호프 백작이 제 딸을 끔찍이 사랑한다고들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데미안은 루드윅 공작가와 리겔호프 백작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소문 외에도 알고 있는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는 모 백작가의 파티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목격한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멍청한 년! 똑바로 하지 못해!”

“자, 잘못했어요, 아버지!”

평소 제 딸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는 것같이 물렁하던 리겔호프 백작이 매섭게 에디트의 머리를 때렸고, 평소 아비 앞에서도 도도하게 콧대를 세우던 에디트는 어깨를 움츠린 채로 용서를 빌었다.

처음에는 제가 잘못 본 게 아닐까 했지만, 착각할 수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레이바튼 백작 영식이 아니라 애버튼 백작 영식이라고 몇 번을 말해! 이번엔 확실히 해라. 애버튼 백작 영식한테 접근해서, 앵커튼 다리 수주 비용에 대한 정보를 빼오는 거다. 알겠느냐?”

“네, 아버지. 죄송해요. 이번엔 꼭, 실수하지 않을게요.”

그 둘의 모습을 좀 더 지켜본 데미안은 확신을 얻었다.

‘에디트 리겔호프의 도도한 악녀 이미지는 완전히 만들어진 거였어!’

육감적이고 아름다운 에디트는 어딜 가든 눈에 띌 만큼 화려했고, 그런 그녀를 탐내는 남자들 역시 많았다.

그리고 에디트는 그런 남자들을 홀려 제 아비를 위한 정보를 빼어다 준 것이다.

“말도 안 돼! 리겔호프 백작이 에디트 그 계집애 말이라면 껌뻑 죽잖아!”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이건 확실한 정보야. 너도 어디 가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마. 이건 극비니까. 알았어?”

“응. 알았어!”

데미안은 아까까지 제 분을 못 이기고 씩씩대던 여동생이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다정하게 덧붙였다.

“조금만 참아, 레일라. 킬리언 루드윅과 에디트 리겔호프의 결혼 유효기간은 올해까지야. 내년에는 철광석 유통권을 우리 가문에서 얻어내게 될 테니, 킬리언 루드윅의 옆자리를 네게 주마.”

그제야 레일라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오빠……!”

“그러니 울상 좀 펴라. 미간에 주름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는 없어.”

“응! 고마워, 오빠!”

레일라는 언제 찻잔을 집어 던지며 패악을 부렸냐는 듯 오라비에게 애교를 피우며 행복하게 웃었다.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