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이 무거웠지만 잠은 서서히 깨고 있었다.흩어지는 꿈의 잔상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에디트의 눈빛이 마지막까지 나를 붙들고 늘어졌다.
“으음…….”
작게 신음을 내는 동시에 현실감이 들어 나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한동안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남자의 가슴팍만 의아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뻑뻑한 눈을 좌우로 굴려 가며 기억을 더듬다가 웬 미친 남자에게 죽을 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한동안 굳은 것 같았던 몸을 움직이자 내 몸 위에 있던 팔이 더욱 단단히 나를 껴안았다.
“으윽.”
“에디트……?”
킬리언의 푹 잠긴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아, 킬리언이었구나.’
내가 킬리언에게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커다란 안도감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에디트. 정신이 좀 듭니까?”
“킬리언…….”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긴 저택이고, 당신은 무사합니다. 이제 괜찮아…….”
킬리언의 커다란 손이 내 등을 도닥도닥 두드렸다.
“내가 얼마나 잔 거예요?”
“반나절 잤습니다. 다행히 뇌진탕은 아닌 것 같고, 그저 긴장이 풀려 기절했다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기절한 사람을 안고 자다니요.”
내가 킬리언을 살짝 타박했지만 그는 오히려 당당해 보였다.
“당신이 나를 안 놔줬습니다.”
“어? 정말요?”
“기절한 채로도 내 옷을 붙들고 있었고, 잠꼬대처럼 계속 나를 찾았으니까요.”
킬리언 꿈을 꾼 것도 아닌데 신기한 일이었다.
“그, 그랬군요…… 미안해요.”
“미안하긴요. 앞으로도 그렇게 나만 찾으라고 하는 소립니다. 딴 놈 이름 부르면 큰 사달이 날 테니, 꿈에서도 내 생각만 하는 게 좋을 겁니다.”
누가 집착 서브남 아니었달까 봐 참 성격 한번 꾸준하네.
어쨌든 그는 내 등을 계속 토닥이고 쓸면서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가 어린애 달래듯 토닥이는 걸 그냥 즐기고 있었다. 정말 마음이 더 안정되는 것도 같았다.
“어제 일은…… 어떻게 된 건가요?”
입을 떼도 할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일단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야 했으니까.
“무엇부터 말해야 할까요?”
“으음…… 어떻게 당신이 날 찾았는지부터……?”
킬리언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내 등을 쓸면서 느릿하게 말했다.
“당신이 리제와 둘이서만 나간다고 했을 때…… 왠지 모르게 영 느낌이 좋지 않더군요.”
“……신기하네요. 촉이 좋은가 봐요?”
“그거야 저도 모를 일이죠. 사실은 어제, 리제가 제 오늘 일정을 물어보더군요.”
“그래서요?”
“오전부터 나갈 일이 있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서브 남주 킬리언이 거짓말까지 할 만큼 리제를 의심하다니.
이제 이 세계는 <집·사절>의 이야기 속이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아침에 황궁으로 가는 척하다가 돌아와서 기사 둘을 데리고 르벨마리 거리에 간 겁니다. 우연히 만난 척하려고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