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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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가 의도적으로 유혹하려던 건 아니라고요.”

“한밤중에 남자의 침실에 야한 침의 차림으로 들어와 키스했지만 유혹은 아니었다, 라…… 편리한 변명이군요.”

“아, 아니, 저는 정말로 이, 입만 딱 한 번 맞춰보려고 했어요. 정말이에요.”

열심히 해명했지만 킬리언은 조소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긴,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게 유혹……한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명확히 알 것 같았다.

자신의 거짓을 가리기 위해 몸으로 유혹하는 탕녀!

와…… 전생에는 내가 이런 대단한 타이틀을 얻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이제 좀 알 것 같군요. 킬리언 루드윅은 잡아놓은 물고기니까, 이젠 다른 사냥감에 집중하려는 겁니까?”

“네? 하하, 킬리언! 도대체 어떤 상상의 나래를 펴는 거예요? 다른 사냥감이라뇨? 그래, 저한테 잡힐 만한 사냥감이 여기 존재하기는 해요?”

그의 말도 안 되는 가정이 웃겨서 웃었더니 킬리언은 이를 갈며 내가 바싹 다가왔다.

그의 호흡이 상당히 거칠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당신이 실력 좋은 사냥꾼이라는 소문은 저도 익히 들었거든요. 본인의 장점을 그렇게 잘 이용하신다고요.”

“장점?”

그의 입술이 불시에 내 목덜미에 닿았다.

“에디트 리겔호프의 속살이 그렇게 매끄럽고 향기롭더라는 얘길, 제가 어디서 들었을 것 같습니까?”

“아!”

목덜미 위를 입술로 지분거리던 그가 내 어깨를 깨물었다.

“젊은 남자들이 모이는 클럽에서, 당신은 꽤나 뜨거운 주제였습니다. 아십니까?”

그가 깨문 곳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아슬아슬한 기분이 들어 숨이 가빠왔다.

“듣고 싶지 않아도 늘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당신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당신에게 당한 남자가 얼마나 많은지…….”

그 점은 좀 억울했다.

에디트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남자와 선을 넘은 적은 없었다.

물론 살살 유혹한 적도 있고, 은근히 주물럭대는 손길을 모른 척한 적은 있어도 그 이상은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그건 리겔호프 백작의 지침이기도 했다.

어디에 팔아치울지는 모르지만 처녀가 아니면 값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니 내 이름을 대면서 무용담을 늘어놓은 놈들은 전부 허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내 말에 귀나 기울여줄까.

“그러니…… 남자를 유혹하는 게 얼마나 쉬웠겠습니까?”

“아, 아니에요, 아니야……!”

“이럴수록 사내가 이성을 잃는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테고.”

그가 내 침의를 성마르게 끌어 내렸다.

그의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기묘한 기대감이 차올라 나는 그를 적극적으로 막지 못했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거칠게 달려들리라 생각했던 킬리언이 갑자기 우뚝 멈췄다.

“키, 킬리언……?”

내 어깨 너머로 그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뭐지? 내가 뭐, 분위기 깰 만한 짓을 했나?’

그런 생각이나 떠올렸던 건 내가 흥분에 잠식당한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킬리언은 아까까지 달아오르던 흥분이 한순간에 사라지다 못해 얼어붙은 것 같았다.

그는 황급히 내 침대에서 내려가 근처의 등불을 밝히고는 다시 내 어깨 뒤쪽을 살피기 시작했다.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