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플래시백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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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겪었던 지난 생의 결혼식에서, 그들의 식장을 가득 채웠던 꽃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최고급 흰 장미였다.

그러나 클리프가 가져온 예산서에 적힌 장식 꽃은 흰 수국이었다.

꽃송이가 커서 몇 송이 놓지 않아도 풍성해 보이겠지만, 그런 ‘효율성’은 리제가 원하는 ‘주인공다움’과 거리가 멀었다.

“식장의 꽃은 흰 장미로 해 줘요. 뿌리는 꽃잎도요.”

“하지만 그 정도 수량의 흰 장미는 요즘 어려워. 흰 수국도 예식 꽃으로 인기…….”

“클리프. 설마, 당신까지 날 무시하는 거예요?”

“그럴 리가 없잖아, 리제!”

“그럼 제가 말한 대로 해 주세요. 해 주실 수 있죠?”

리제는 짜증을 꾹 참고 생긋 웃어 보였다.

“……그래, 네가 원하는 거라면.”

클리프 역시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리제는 그의 대답 앞에 붙었던 작은 한숨이 못 견디도록 불쾌했다.

‘언제는 내 발아래 제국을 갖다 바칠 기세더니.’

리제로 살던 삶 내내 클리프는 그녀의 한 줌 애정을 갈구했고, 리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결혼식과 관련한 대화가 오갈수록 의견이 부딪치는 횟수는 늘었고, 클리프의 한숨 역시 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리제가 물러나지는 않았지만, 복병은 가문의 예산을 관리하던 공작 부인이었다.

“리제. 잠깐 얘기 좀 하자꾸나.”

리제의 말이라면 껌뻑 죽던 공작 부인이었으니, 리제는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녀라면 자신의 요구를 물릴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클리프가 결혼식 계획을 짜 왔는데, 내가 보기엔 좀 아니다 싶어서 말이야.”

“네? 어떻게 짰는데요?”

“얘가 너랑 결혼한다니까 너무 신난 모양이더라. 온갖 사치품을 다 넣었더라고.”

공작 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클리프가 작성한 결혼식 계획과 예산서를 리제에게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리제가 요구한 모든 게 그대로 다 들어 있었다.

“이대로 식을 치렀다간 공작가가 헛바람이 들었다고 소문이 날 거다. 클리프가 널 사랑하는 거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킬리언의 결혼식과 이렇게나 차이가 나서야, 원…….”

그녀는 이 계획이 다 클리프의 과도한 애정에서 비롯된 거라고, 리제가 보면 전부 검소하게 뜯어고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았다.

‘원래는 내가 말려도 너희들이 이런 결혼식을 열어 줘야 하는 거라고!’

리제는 치미는 분노를 간신히 삼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답했다.

“부인께서는 제게 이 정도의 예산이 나가는 게 아까우신가요?”

“리, 리제……?”

“그래요, 저야 사생아에 하찮은 계집이지요. 하지만 클리프는요? 공작 후계인 클리프의 결혼식인데, 다른 귀족의 결혼식보다 초라해서는 안 될 일이잖아요.”

공작 부인은 놀란 눈을 크게 뜬 채 할 말을 잃었다.

결국 결혼식은 리제가 원하던 대로 흘러가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리제는 공작 부인과 전처럼 지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리제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까짓 엑스트라 따위에게 살랑거려 봤자 더는 득 될 일도 없다고.’

사실 저에게 거리를 두는 공작 내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에디트의 태도였다.

배알이 없는 건지, 아니면 이미 리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건지, 에디트는 저를 죽이려 했던 상대의 결혼식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의 주인공인 클리프와 리제보다 킬리언과 에디트 쪽이 훨씬 행복해 보일 정도로.

리제는 그게 그렇게 못마땅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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