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사교계에는 적응을 못 하겠네. 시골 촌부 따위가 바자회를 휘젓고 다니고. 게다가 눈치도 없잖아?”내가 저를 빤히 쳐다보며 공격할 줄은 몰랐는지, 그 부인이 눈을 날카롭게 치켜떴다.
“저건 또 뭐라니?”
“에디트 리겔호프요.”
“아아, 그 막 나간다던……? 정말 소문대로구나. 심지어 사생아보다 어느 한 군데 나아 보이는 데가 없네.”
“그래서 자기 남편한테도 무시당하고 산다던데요?”
그들은 작정한 듯이 나를 조롱했다. 하지만 나는 원작의 에디트가 아니라서 저런 말에 흥분할 일이 없었다.
“흐음…… 그래서, 그 막 나가는 에디트 ‘루드윅’에게 막 나가는 그쪽은 도대체 어느 시골에서 올라오신 분이랍니까? 얼굴만 봐서는 누군지 전혀 모르겠네요.”
입 다물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곁에 있던 영애 하나가 턱을 치켜들며 답했다.
“브린 백작 부인도 몰라뵐 정도라면, 에디트 양, 자신의 교양과 식견을 되돌아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얌전히 지나가는 사람한테 시비를 거는 사람은 기본예절부터 다시 배워야 할 테고요.”
그 말에 브린 백작 부인이라던 그 여자의 미간이 더 일그러졌다.
“이제 보니 저 사생아가 더 나아 보이는구나. 적어도 자기 위치는 잘 아는 것 같으니.”
“그리고 부인은 바로 그 ‘사생아보다 못한 여자’ 눈에 잘 보여야 할 거예요. 지금 이 일이 공작 부인의 귀에 들어가면 브린 백작가가 위험해질 테니까.”
브린 백작 부인은 부채를 꽉 쥔 채 다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루드윅 공작가에서 탐탁지 않은 며느리를 들였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이야.”
“리겔호프 백작가에서 억지로 들이민 거래요.”
“킬리언 님이 불쌍한 거 있죠?”
마치 여왕벌 주변에 몰려든 일벌들처럼 젊은 영애들은 브린 백작 부인의 마음에 들 만한 소리만 쏟아내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참 웃겼다.
“그래, 할 말 다 하셨으면 길 좀 막지 말아줄래요? 이 뒤로 클리프 루드윅 님이 오고 계셔서.”
왠지 클리프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한 건데 진짜로 클리프가 보였는지 그녀들은 못마땅한 시선을 남기고는 서둘러 사라졌다.
그리고 뒤에서 클리프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거기 서 계십니까?”
클리프의 목소리에 그제야 리제가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나는 클리프를 흘끗 돌아보았다가 리제에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네. 저는 괜찮은데…….”
“아는 사람이에요?”
“싱클레어 백작 부인의 친구분이세요. 저 때문에 에디트까지 심한 말을 듣게 되어서…… 정말 죄송해요.”
“저야말로 괜찮아요. 제멋대로 떠들라죠, 뭐. 저는 꿀릴 거 없어요.”
내가 어깨를 으쓱하는 사이 클리프가 와서 리제의 안색을 살폈고, 리제는 재빨리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어 보였다.
‘얘도 참 힘들게 산다.’
루드윅 공작가에 잘 보이려는 사람들은 그들이 리제를 아끼는 것을 알기에 알아서 리제를 추켜세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원작의 4권을 지나고 있는 지금도 리제를 사생아라며 얕잡아보았다.
‘그 험담 대상에 나까지 끼게 된 것 같지만…….’
리제를 얕보는 무리마저 나를 리제보다 더 못한 존재라고 비아냥대니 원작의 에디트라면 눈이 뒤집힐 만도 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희가 아니라 킬리언 하나가 더 중요하거든.’
나는 다시 ‘선택과 집중’을 되뇌며 공작가의 천막으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