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리제도 기분이 좋은가 보네.’리제가 입술에 꾹 힘을 주고 미소를 참으려 하고 있었다. 시선이 스타일 북에 가 있는 것을 보니 역시 새 드레스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 같았다.
‘괜찮다고는 해도 새 드레스 맞춘 게 기뻤나 보네. 제 입으로는 사달라고 말도 못 하고. 어휴, 불쌍한 것.’
나는 덩달아 리제의 호감을 산 것이기를 바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내 방에 돌아왔다.
* * *
결혼식 후 보름이 지나자 공작 부인은 내게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공작 부인의 집무실로 찾아가자 나를 맞이한 건 다름 아닌 리제였다.
“어서 오세요, 에디트 양!”
환하게 웃는 얼굴이 언제나처럼 해말갛다.
“좋은 아침이에요, 리제 양! 일찍 온다고 왔는데, 먼저 오셨네요?”
나는 방긋 웃으며 그녀의 인사에 화답했다.
원작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나는 공작 부인의 집무실에서 리제가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았지만, 원작의 에디트는 아니었다.
“어떻게 이 집의 가족도 아닌 사람에게 가문의 문서를 맡길 수가 있나요? 심지어 귀족도 아니고, 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사람을……!”
타당한 의문이었지만, 이미 이 집안의 딸처럼 지내고 있던 리제였기에 공작 부인은 에디트의 불만을 상당히 불쾌하게 여긴다.
그러니 나는 방긋 웃는 얼굴로 대처할 것이다.
“제가 아무래도 일이 서투를 테니, 리제 양이 많이 가르쳐 주세요.”
“저야 공작 부인의 심부름이나 하는 수준인걸요.”
“어머님께서 아무나 곁에 두실 리가요. 앞으로 우리, 사이좋게, 재미있게 지내요.”
리제는 내가 앉아서 일할 자리로 안내해 주었고, 공작 부인은 흐뭇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동서지간(?)에 사이가 좋아 보이니 기쁜 모양이었다.
내가 쓸 책상 위에는 잉크와 펜, 문서 트레이, 서류 한 뭉치가 놓여 있었다.
‘이 세계에서도 회사 일 하는 기분이라니…… 한국인들은 왜 로판을 써도 거기서 일을 하게 만들까?’
회사에 첫 출근하던 날이 떠오르는 분위기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내가 전생에 얻은 삶의 지혜 중 하나가 바로 ‘뭐든 배워놔서 나쁠 건 없다.’라는 것이다.
‘야반도주하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지만, 혹시 또 모르지. 킬리언이 회까닥 돌아서 날 데리고 영지로 내려갈지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 배운 것들을 유용하게 써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에디트.”
“네, 어머님!”
“너한테 준 서류 뭉치는 정리가 하나도 안 됐을 거다. 아마 날짜가 엉망으로 뒤섞여 있을 거야. 그걸 날짜에 맞게 잘 정리해 주면 된단다.”
“단순히 날짜별로만 정리하면 되는 건가요? 거래처별로, 혹은 거래 물품별로 분류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분류해 주면 더 고맙고.”
“네!”
긴장하고 있었던 게 민망할 정도로 단순한 일이었다.
나는 서류 뭉치를 일부 덜어내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정도쯤이야! 양이 많아서 문제지, 일이 어려운 건 아니네.’
가끔 악필로 적은 서류가 있어서 ‘해독’을 하느라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서류를 정리해 갔다.
“에디트도 일머리가 좋구나. 깔끔해.”
내가 정리해서 쌓아둔 서류 일부를 확인해 본 공작 부인에게 칭찬까지 들었다.
‘좋았어! 이렇게 원작이 바뀌어 나가는 거지!’
나는 쑥스럽게 웃다가 리제와 눈을 마주치고는 다시 헤헤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