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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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클리프나 리제나 공작 부부나, 알아서 잘들 살겠지. 난 이제 내 행복만 신경 쓰며 살 거라고.’

그런 한가한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결혼식장을 둘러보는 내 표정을 또 어떻게 오해했는지, 킬리언이 무서운 말을 했다.

“혹시…… 결혼식을 또 하고 싶으면…….”

“미쳤어요?”

“……미쳤다고 할 것까지는 없잖습니까.”

“표현이 거칠어서 미안한데, 난 진짜 우리 결혼식을 버티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조금만 숙여도 가슴이 다 보일 것 같은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까지 신은 채 하루를 버텨본 적 있어요?”

말만 해도 식은땀이 흐른다.

“그땐…… 당신이 그런 차림을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말했잖아요. 내가 욕먹을 모든 행위는 다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사람’이 시킨 거라고. 난 우리 결혼식 날 척추가 꺾이는 줄 알았다고요.”

내 질린 듯한 목소리에 킬리언은 쿡쿡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때, 하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와 킬리언은 공작 부부와 함께 입구에 서서 하객들을 맞이했다.

“세상에, 에디트 양! 아니, 이젠 라이젠 백작 부인이죠? 늦었지만 얘기 들었어요. 고생이 많았다고요.”

얼굴도 모르는 나이 지긋한 부인이 내 두 손을 꼭 잡아 쥐며 위로를 건넸다.

그동안 사교계에 퍼진 소문은 레일라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리겔호프 백작의 반역 모의를 말리다가 집안의 눈 밖에 났고, 그 때문에 험한 일도 당했다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동정심을 샀다.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 지금은 킬리언과 시부모님께서 잘 보살펴 주신 덕분에 괜찮아졌어요. 오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나는 밝게 웃으며 그 부인을 식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런 인사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내게 주어진 의무니까 안면 근육 마비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그래도 전 같았으면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는 생기지 않았을 텐데…… 원작의 흐름이 없어진 덕분인가?’

내가 리겔호프 백작의 여동생이 낳은 사생아라는 것까지는 소문이 나지 않았다.

처형장에서 소피아가 마지막 복수라도 하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내 출생의 비밀을 까발렸다는데, 사실 다른 가문에서도 나 같은 사생아들은 많이 태어났고 이미 결혼한 형제가 입양하는 식으로 숨기고는 했기에 그다지 대단한 폭로도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리겔호프가의 핏줄이라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 사실인데, 사람들은 뜻밖에도 나를 피해자라고 봐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원작의 흐름이 여태 나를 못살게 굴었다는 거네.’

다시 한번, 내가 원작자와의 게임에서 이겼다는 게 다행스러운 한편으로는 왠지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에디트?”

“……아! 미안해요. 불렀어요?”

“혹시 몸이 안 좋으면…….”

“아니에요! 괜찮아요.”

나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킬리언에게 마음을 다해 웃어 보였다.

이제 내 곁에는 킬리언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사소한 허탈감쯤이야 금방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다.

하객 맞이가 거의 끝나갈 무렵, 저쪽에서 어떤 중년 부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자기가 가진 초대장을 몇 번이나 확인하며 쭈뼛거리고 있었다.

본인들이 가진 옷 중 가장 좋은 것을 입은 것 같았지만 워낙 고위 귀족이 몰린 결혼식이라 그들은 상대적으로 조금 초라해 보였다.

나는 활짝 웃으며 그들을 맞았다.

“루벤 남작님! 남작 부인!”

그들은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