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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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턴 대공파는 꾸준히 크고 작은 연회에 참석하여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고 하니까요.”

남들의 눈을 피해 루드윅가에 들른 카트린 황녀는 공작 부인이 내어준 차를 마시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동안 위세 떤다는 소릴 들을까 봐 연회 참석을 피해왔는데, 그게 저들에겐 오히려 꼬투리를 잡을 빌미였나 보군요.”

공작 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갑자기 얻은 명성과 권력이었기에 루드윅 공작가는 황실에 조금이라도 폐를 끼칠까 봐 몸을 사려왔다.

하지만 아무리 이쪽이 좋은 의도로 조심해도, 헐뜯으려는 자들은 어떻게든 나쁜 쪽으로 꼬아 해석했다.

“저희가 위축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머니. 다만…… 괜히 한순간의 분위기에 휩쓸려 대공파에 가담했다가 화를 입을 사람들이 생길까 걱정이네요.”

나는 차분하게 내 의견을 말했다.

내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리겔호프 백작의 딸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스울 것이다.

“의외네요, 에디트 양.”

역시나, 카트린 황녀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에디트 양으로서는 대공파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좋은 거 아닌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전하?”

“그래야 리겔호프 백작가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니까?”

카트린 황녀는 내게 악의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내 속내를 떠보고 싶을 뿐이다.

물론 내 입장은 이미 오래전에 확고히 정해진 상태였다.

‘리겔호프 백작가가 승리한다고 해도 나는 그들에게 배신자일 뿐이라고.’

하지만 남들 눈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영지전이 끝나고 나면 내가 리겔호프가와 완전히 연을 끊었다는 걸 다들 알게 되겠지만 날 욕할 사람들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을 것이다.

‘루드윅가가 승리하는 건 확실해. 그걸 조금이라도 안타까워하면 나도 반역자라 모함할 거고, 기뻐하면 제 부모 형제를 버린 독한 년이라고 손가락질하겠지. 뻔하잖아?’

어떻게든 욕을 먹을 거라면 차라리 후자가 낫다. 목숨은 건지고 봐야지! 날 학대한 인간들이 몰락하는 꼴도 보고 싶고!

“전하. 사람은 단 한 가지의 입장만 갖는 게 아닙니다. 황녀 전하께서도 황녀라는 위치와 누군가의 아내라는 위치가 서로 충돌하는 일을 겪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글쎄. 더 중요한 쪽을 우선해야겠지.”

“중요하다는 판단은 누가 내리나요?”

“으음…… 아버님이나…….”

제멋대로라는 소릴 듣는 황녀라지만, 이럴 때 보면 아직 전통적인 교육의 테두리에 갇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전하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요? 그래도 남의 말을 듣고 그랬다고 변명할 수 있습니까? 결국은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겁니다.”

“어…… 응…….”

“저 역시 선택한 겁니다. 저를 루드윅 가문에 시집보내고도 제게 상의 한마디 없이 영지전을 일으킨 친정보다, 저를 여태 지켜준 시댁을요. 어떤 결과가 나와도 저는 제 선택에 책임을 질 거고, 이 선택에 누가 욕을 한대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 없는 선택이었지만 저 사람들은 그걸 모를 테니, 그냥 기특하게만 여겨줬으면 좋겠다.

“에디트 양은…… 의외로 강단 있네.”

“의외인가요?”

“미안하지만, 응, 그래. 사실 예전에 그대를 봤을 때는 리겔호프 백작에게 굉장히 휘둘리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거든. 남들은 다 리겔호프 백작이 그대를 오냐오냐 키운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꼭…… 그대가 계속 아비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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