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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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말 미쳤구나.”

“하…….”

“여태 먹여주고 입혀주고 길러준 가문의 은혜를 배신해? 우리 가문에서 배신자를 살려둘 것 같으냐?”

나는 서둘러 눈물을 닦고 셰인을 쳐다보았다.

“그동안 먹여주고, 입혀주고, 길러줬다, 라…… 그래요, 그걸 굳이 은혜라고 한다면, 그때의 제 편지야말로 은혜를 갚기 위해 보낸 거예요. 제 경고, 무시하지 않으시는 게 좋아요.”

진심 어린 내 충고에도 셰인은 나를 향해 비릿하게 웃더니 낮게 을러댔다.

“주인을 못 알아보고 날뛰는 개새끼한테는 매가 약이지. 네가 루드윅가에 있다고 해서 네 목줄 조일 방법이 없는 줄 알아?”

그러고는 훌쩍 자리를 떠버렸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심장이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에디트의 아주 오래전 기억이 뒤늦게야 떠올랐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아버지! 죄송해요!”

“멍청한 년! 몇 번을 가르쳤는데 그걸 못해서!”

“꺄악! 잘못, 잘못했어요!”

뺨과 머리와 등과 팔뚝…… 아니, 손과 발이 닿는 데면 아무 곳이나 마구잡이로 팼던 리겔호프 백작이 아른거렸다.

도대체 제 친딸에게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린 에디트는 감히 반항할 생각도, 도망칠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고, 그녀는 아비의 꼭두각시가 되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에디트에게는 이 결혼이…… 킬리언이…… 정말로 간절했겠구나.’

그래서 루드윅가 내부의 정보를 빼내라는 리겔호프가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면서도 킬리언을 애타게 원했던 것이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른 점이 많은데도 나는 에디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이도 아닌 에디트에게 빙의하게 된 것일까.

내 목숨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에디트라는 인물이 비참하게 죽도록 놔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크게 심호흡하고 정신을 차렸다.

‘하아, 너무 지체됐어. 늦게 가면 의심받을 거야.’

나는 서둘러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손거울로 보니 셰인이 때렸던 뺨이 붉었지만, 햇빛에 조금 달아오른 것 같다고 둘러대면 어찌어찌 넘어갈 것 같았다.

자꾸만 입꼬리가 떨어지는 것 같아 웃는 연습도 몇 번 하고 나서 건물의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킬리언과 눈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한참 찾았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오는 겁니까?”

“아…… 저택이 아름다워서 이쪽엔 어떻게 생겼나 보려고…….”

“궁금할 것도 많군요.”

나는 고개를 숙여 셰인에게 맞은 쪽 뺨을 머리칼로 가리고 일부러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일부러 저 찾으러 오신 거예요?”

“그럴 리가요. 저 역시도 손을 씻으러 나왔다가 찾은 것뿐입니다.”

“아아, 그렇구나. 하마터면 설렐 뻔했네요.”

“그런 것에 설레십니까?”

네가 애냐는 뉘앙스가 가득하다.

“내가 사라진 자리를 신경 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죠. 안 그래요?”

진심이다.

그래서 씁쓸했다.

죽은 최수나의 빈자리를, 누군가는 신경 써주었을까?

내가 에디트 루드윅으로 죽으면, 그 빈자리는 누가 신경 써줄까?

말이 없어진 킬리언의 뒤를 따라 천막으로 돌아온 나는 셰인의 협박과 기댈 곳 없는 내 처지에 대해 생각하며 조금 힘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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