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성으로 돌아가자꾸나.”“네.”
필리악 산에서 내려온 그들은 영주성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영지의 주인을 맞은 성의 집사 빈센트는 정신없이 바빴다.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성 안팎을 쓸고 닦았지만,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건 킬리언도 마찬가지였다.
영지의 성은 관리인에게만 맡겨두었기에 장식이랄 것도 전혀 없었고 귀족의 삶에 필요한 사치품도 없었다.
‘성 자체는 관리가 잘 됐지만, 내부 장식이나 가구 같은 게 너무 투박해. 에디트, 그 여자가 얼마나 트집을 잡겠어?’
경멸스러운 가문이기는 해도 리겔호프 백작가의 재산 수준은 얕잡아볼 만한 게 아니었다.
그 집안에서 에디트의 치장에 들이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했으니, 이 성이 그녀의 눈에 찰 리 없었다.
‘수도로 돌아가면 실력 괜찮은 가구 장인 먼저 찾아봐야겠군. 태피스트리나 휘장 같은 것도 좀 알아봐야겠고…… 다른 것들은 그 여자더러 찾아보라고 해야지.’
조만간 작위를 받으면 꾸물대지 않고 곧장 영지로 내려와 버릴 생각이었으니 시간이 없었다.
어차피 와야 하는 곳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와서 영지를 살피는 게 나았고, 공작저 내에서 에디트 관련 문제가 계속 생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파티나 사치스러운 일상하고 멀어지면 그 여자가 좀 힘들어하려나? 그래도 뭐 어쩌겠어? 백작 부인이 되려면 감내해야 할 일도 있는 거지.’
생각해 보면 에디트는 결혼한 이후에는 파티에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여기서도 그럭저럭 잘 지낼지도 모른다.
정 힘들어하면 겨울 동안은 에디트만 수도에 보내도 될 테고.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걱정되는 부분도 분명 존재했지만, 킬리언은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그는 라이젠에 머무는 동안 영지의 문제와 앞으로 힘써야 할 방향에 대해 아버지와 깊게 이야기를 나누다 수도로 돌아왔다.
킬리언으로서는 독립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부푸는 시간이었다.
그 모든 생각에 에디트가 끼어들었다는 건 그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 * *
대망의 바자회 날이 밝았다.
그가 받을 영지를 둘러보러 갔던 킬리언은 어제 돌아왔다는데, 돌아오고 나서도 공작 부부와 의논할 일이 많았는지 코빼기도 보여주지 않았다.
하긴, 그가 내게 보고할 의무는 없지만…….
다행히 나도 자수 작품을 완성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그의 부재를 아쉬워할 틈은 없었다.
“진짜 괜찮아 보여?”
“물론입니다, 아가씨. 자수에 취미가 없는 부인들도 많아서,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요.”
죄 없는 안나는 벌써 며칠째 불안해하는 나의 질문 세례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제 와 어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나는 ‘괜찮다.’라는 대답을 듣기 위해 몇 번이고 안나를 괴롭혔다. 리넌에게는 혹평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몇 장을 더 만들어보고는 그중에서 제일 괜찮은 것 세 장만 바자회 출품용으로 골라냈다.
그것도 영 눈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막상 바자회 날 아침이 밝자 무덤덤해졌다.
‘그래, 뭐, 이것 좀 안 팔린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이번 에피소드는 리제와 에디트의 능력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이니까 잘못됐다고 해서 목숨이 위험해질 일은 없었다.
나는 애써 만든 손수건 석 장을 가방 안에 잘 챙기고 야유회용 드레스를 꺼내 입었다.
이것 역시 결혼하면서 가져온 드레스를 수선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