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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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 서류를 유출하지 않았다면, 리겔호프 백작이 왜 이 서류에 나온 물건들만 골라서 선매했겠느냐? 내, 이런 일을 우려해 너에게 가짜 서류를 만지게 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믿지 못해 가짜 서류를 정리시켰고, 내가 그들의 함정에 착실히 빠져 이 가짜 서류를 리겔호프 백작가에 유출했다는 소리였다.

다시 한번, 황당했다.

나는 이 서류를 유출한 적이 없었으니까.

서류를 유출하라는 백작의 편지에 정신 차리라고 답장까지 했건만.

“저는 이 서류를 유출한 적 없습니다.”

“하하! 너도 참 대단하구나.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된 일 같으냐? 너만 볼 수 있는 서류가 어떻게 리겔호프 백작가로 넘어갔을까?”

“저만 볼 수 있었던 서류는 아니지요, 공작 각하.”

“뭐라고?”

가슴 한가운데가 선득해졌다.

원작의 에디트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 앞에서 헛된 발악만 하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항변하는 것 말고 내가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까 각하께서도 말씀하셨듯, 이 서류는 공작 부인과 리제 양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서류를 만든 사람도 따로 있겠죠.”

“그들은 다 우리 집안 사람들이다.”

“저도 이 집안 사람인데요. 제 서류상 이름은 더 이상 에디트 리겔호프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서류에 신랑측 증인으로서 인장을 찍으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공작 각하 본인이시지요.”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거냐?”

“리제 양의 이름은 뭔가요? 리제 루드윅입니까?”

내 도발적인 질문에 집무실의 공기가 쩡 얼어붙은 것 같았다.

“지금…… 네 잘못을 리제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냐?”

“제가 그 문서를 유출했다는 걸 누가 봤답니까? 제가 보던 서류의 내용을 리겔호프 백작가에서 알고 있었다, 이 사실만으로 제가 범인이 되어버리는 겁니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 사람들은 나를 그저 바보 취급하고 있었다. 아니, 바보 첩자쯤 될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 서류를 제가 보고 있었다는 걸 공작 부인도 아시고 리제 양도 압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사실을 알지요.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제가 제일 먼저 의심받을 것을, 제가 몰랐겠습니까?”

처음으로 공작의 입이 다물렸다.

그래, 그는 내가 그 정도도 신경 쓰지 못하는 멍청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저를 조금도 믿지 않으셨다면, 차라리 그런 일을 제게 맡기지 마셨어야죠!”

그런데도 그들이 내게 그 일을 맡겼던 이유를, 나는 안다.

“하긴…… 제가 문서를 유출했다는 꼬투리를 잡아야 리겔호프 백작가를 압박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렇죠?”

실제로 원작에서는 그랬다.

에디트는 가짜 문서라는 것도 모르고 루드윅가의 내부 정보를 빼내어 제 아비에게 보냈고, 그 일 때문에 에디트는 근신 처분을 받는다.

물론 가짜 정보를 보낸 것이기에 루드윅가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고, 리겔호프 가문은 쓸데없는 물건을 잔뜩 사들인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 문서가 리겔호프 백작가에 전해진 것일까.

화가 나서 리제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는 했지만, 사실 리제가 그런 짓을 할 이유도 없었다.

‘역시, 원작의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는 건가?’

불안하던 추측이 점점 단단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절망스러웠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킬리언에게 목이 잘리는 결말을 피할 수가 없는 거야?’

이런 빙의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았다.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