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지? 왜 어제 거기서 원작이 바뀐 거지?’
여태 내가 에피소드의 결과를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중간 과정이 조금 달라져도 결과는 달라진 적 없었다.
하지만 에디트가 킬리언을 유혹하려고 했던 그 에피소드는 어젯밤, 완전히 달라졌다.
몸으로 유혹하려 했던 에디트를 킬리언이 품어준 흐름이 됐으니, 킬리언은 더 이상 리제만을 위한 동정남이 아니게 되었다.
게다가 킬리언의 첫 키스 상대는 리제여야 하는데 그것마저 어그러졌다.
‘물론 리제의 첫 키스 상대는 클리프지만 말이야. 어쨌든 킬리언의 서브 남주 위치가 흔들리게 되잖아. 이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왠지 웃음이 비식비식 새어 나왔다.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안아 주던 킬리언이, 그와의 입맞춤이, 그의 뜨거운 몸짓이 계속 떠올랐다.
그는 내가 몸으로 유혹하려 했다고 믿는 것 같았지만…….
“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안나의 입은 철저히 단속했으니 아마 저택의 그 누구도 우리가 ‘진짜 부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사실 때문에 자꾸 웃음이 비어져 나왔지만 안나에게 그 꼴을 보이기는 민망해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진짜 부부라니…… 어우야, 어떡해, 어떡해!’
그와의 일을 곱씹으며 이불을 발로 차기도 하고 헤실헤실 웃기도 하던 중에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또다시 아나운서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단계 예외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예외 상황이 발생하고 원작자의 권한이 줄어들었습니다. 1단계 예외 조건은 소멸됩니다.]
‘뭐?’
기이한 설명이었다.
1단계 예외 조건? 그게 충족이 됐어? 그리고 원작자의 권한은 또 뭐야?
내가 묻는다고 답해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온 힘을 다해 그 목소리에게 물었다.
‘1단계 예외 조건이 도대체 뭔데요?’
그런데 의외로 목소리는 대답해 주었다.
[1단계 예외 조건 : 원작의 에디트가 실패한 방법을 따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선, 저 목소리는 이 세계가 소설 속이라는 것과 내가 빙의했다는 걸 안다. 원작의 에디트와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아는 거다.
게다가 ‘예외 조건’이란, 원작의 흐름대로 끌려가는 이 상황에서 원작을 비틀 수 있는 ‘예외’를 만들기 위해 충족시켜야 할 조건이라는 말 같았다.
지난번 목소리가 3단계 어쩌구 운운한 데다 이번에는 1단계라고 하는 것을 보니 이게 몇 단계가 있는 것 같았고.
누군가가 소설에 빙의한 나를 내려다보며 조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원작의 에디트가 실패한 길을 따르지 않으려고 죽도록 애썼는데, 그게 결국은 내 목을 조르는 짓이었단 말이야?’
누가 설정한 조건인지는 몰라도, 너무나 악취미였다.
실패한 방법을 따라야 ‘예외 상황’이 발생한다니.
하지만 아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아직도 목소리가 했던 말을 다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희망적인 사실 한 가지는 확실했으니까.
‘원작이 달라질 수 있는 거였어!’
꿈속의 목소리는 절대 무시할 것이 아니었다.
저번에도 목소리가 일러준 것처럼 내 상황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지 않았던가.
그러니 내가 저 변태 같은 1단계 예외 조건을 운 좋게 충족하고 원작을 변화시켰다는 건 믿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