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엑스트라들이 유연하게 대처해서 이 세계의 흐름이 깨지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그런데 13번째 에디트는 공작 부인과 그녀의 보좌관 리넌을 제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이름도 없는 사용인들에게 인사하고 다니며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게다가 독 파이 자작 사건에 이어 하지도 않은 짓 때문에 또 범인으로 몰리면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냉정하게 킬리언을 설득했다.
심지어 문서 유출 사건 때보다 더 당당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한편, 싱클레어가를 범인으로 모는 그럴듯한 추리를 펼치기도 했다.
덕분에 킬리언은 에디트 쪽으로 더 마음이 기운 것 같았고, 에디트가 범인으로 몰려야 할 사건은 또 덮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의 에디트들이 K의 농간에 속절없이 휩쓸리고 무너졌다면, 13번째 에디트는 K와 맞서 싸우는 느낌이었다.
‘재미있어…… 그래, 이건 재미있는 상황이야.’
K는 자신이 느끼는 긴장감을 호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자, 그럼 이제 2단계 예외 조건은 어떻게 정할까?’
에디트가 절대 못 넘을 조건으로 정해야 했다.
2단계까지 충족시켜 버리면 킬리언은 자신이 거의 지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킬리언 이외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지배력까지 조금 낮아진다.
3단계까지 충족해 버리면 K의 지배력은 거의 무용지물이 되고, 만약 그 때문에 리제와 클리프가 맺어지지 못하게 되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는 K도 알지 못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다차원 우주에서 빙의자를 끌고 온 건 K의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K는 자신의 세계를 지킬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이것은 K가 이기는 게임일 뿐이었다.
‘에디트가 절대 충족하지 못할 조건인 건 물론이고, 조건과 반대되는 행동을 반복하게 해서 원작의 흐름을 강화시킬 수 있어야 해. 그런 조건이 뭐가 있을까?’
한참 고민하던 K는 에디트의 행적을 쭉 살피다가 히죽 웃었다.
잠시 후, 이 세계의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원작의 흐름’이 K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2단계 예외 조건이 설정되었습니다.]
* * *
소피아를 내쫓으며 킬리언은 에디트의 사정에 대해 대충 짐작했다.
‘리겔호프가에서 비싸게 팔아먹을 용도로 키운 딸이군.’
사실 그게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딸을 그런 목적으로 낳고 키우는 집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결혼 동맹이 가장 안전하다고들 믿었으니까.
하지만 하녀를 통해 폭행하면서까지 에디트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웠다.
그만큼 리겔호프가의 연극은 완벽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밝히면 에디트의 입장이 난처해지겠지.’
여태 도도하고 제멋대로 사는 아가씨처럼 자신을 포장해 왔던 에디트가 하녀에게 맞고 지냈다는 소문이 나면 에디트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나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집안마다 사정은 있는 법이니까.’
어쩌면 그들 나름대로는 ‘훈육’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한 데다 악당도 제 나름의 명분은 갖고 있는 법이니까.
만약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학대였다면 에디트도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그래서 킬리언은 소피아가 에디트를 폭행했다는 말은 주변에 하지 않았다.
“최근 일어난 사건들을 살펴보면 그 하녀도 수상해서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