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투스 행 마차, 5분 뒤에 출발합니다! 곧 만석이니 서두르세요!”
드리번 행을 놓쳤으니 아펜투스 행을 타야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지? 정말 어쩌지?’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다시 앉고 초조하게 발을 까딱거리는 사이, 아펜투스 행 마차의 마지막 좌석을 누군가가 간신히 차지하고, 만석이 되자 마차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출발해버렸다.
나는 아펜투스 행 마차가 떠난 빈자리만 멍하니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내일…… 내일은 꼭 아펜투스 행 마차를 타자.’
그렇게 빈약한 다짐을 곱씹으며 마차역과 가까운 여관에 방을 잡았다.
그러나 다음 날도 나는 끝내 마차에 오르지 못했다.
어제와 똑같은 벤치에 앉아 초조하게 발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다가 드리번 행과 아펜투스 행 마차를 다 놓치고 다시 일어나 마차역을 돌아 나왔다.
심지어 그날 저녁부터 열이 나는 바람에 또 3일을 끙끙 앓으며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이러다 잡히겠어.’
조급해진 나는 열이 다 내리자마자 마차역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몸이 다 얼듯이 추운 날이었다.
허름한 마차역 지붕 아래서 눈발을 피하며 마차를 기다리는데, 주변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루드윅 공작가에서 지명수배 내린 거 봤어?”
“아, 나도 아까 오면서 전단 붙은 거 봤어. 꽤 예쁜 여자던데?”
“현상금도 상당하고 말이야.”
“조만간 여기에도 루드윅 기사단이 들이닥치지 않을까? 지방으로 내려가는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않았나 찾아볼 것 같더라고.”
“에이, 곧 죽어도 귀족가 아가씬데 이런 데서 마차를 타겠어? 아는 친척 마차를 빌려 타고 도망쳤겠지.”
여기, 곧 죽을 것 같은 귀족 아가씨는 있습니다만.
‘진짜 마지막이야.’
지지부진하게 미뤄 온 선택과 결정을,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드리번 행 마차는 10분 뒤에 출발이었고, 아펜투스 행 마차는 20분 뒤 출발이었다.
‘고집부리지 말고, 미련 갖지 말고…… 드리번으로 가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마차역 간이매점에서 갓 구운 감자 세 알을 샀다.
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할 테고, 아침을 못 먹었으니 식사 대용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수통에 물은 채워 왔으니 이 정도면 첫 번째 기착지인 라몰로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겠지.
그런 계산을 곱씹으며 드리번 행 마차로 향하려고 몸을 돌린 순간, 나도 모르게 발이 우뚝 멎었다.
잔뜩 움츠린 채 서로 말도 없이 앉아 있는 다른 승객들을, 무심한 얼굴로 담배나 피우고 있는 마부들, 말들이 푸르르하는 소리를 낼 때마다 하얗게 흩어지는 입김…… 그런 무채색에 가까운 마차역 광경을 보자 갑자기 가슴속이 미치도록 아려왔다.
‘외로워…….’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깨달았다. 나는 외로웠다.
삶의 모든 순간이 외로웠던 최수나의 인생을 살면서도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히려 설렘을 가르쳐준 킬리언을 만나고 나서야 외로움을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나……?’
흐느낌처럼 새어 나온 한숨이 하얀 입김이 되어 눈앞을 흐렸다. 아니, 어쩌면 눈물이 나온 건지도 몰랐다.
단지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삶이 이제는 너무나 힘들었다.
나는 도망친 이후로도 내가 3단계 예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걸 늘 의식하면서 조마조마해할 것이고, 그러는 와중에도 킬리언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