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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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딸기는 좀 시어서요. 달콤하게 가공한 쪽이나 딸기 향만 낸 걸 좋아해요.”

“향수는 딸기 향이 아니라 장미 향을 쓰던데.”

“몸에 두르는 향기는 먹을 것 냄새가 나는 것보다 꽃향기가 나는 쪽이 좋아서요.”

킬리언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향을 맡았다.

“나쁘진 않습니다.”

어휴,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어? 잠깐…… 이거 혹시, 리제의 질투심을 자극하려는 건가? 내가 이걸 도와줘야 하나?

기분이 좀 복잡했지만 길게 생각해 볼 시간은 없었다.

일단은 킬리언과 사이좋은 척해보기로 했다. 헛다리 짚은 거라고 해도 사이좋은 척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나쁘진 않은데…… 좋지도 않다는 말씀인가요?”

살짝 유혹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춰 묻자 킬리언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다시 답했다.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늘 두르는 향이 킬리언의 마음에도 든다니 다행이네요.”

이쪽을 보는 리제와 클리프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나는 꿋꿋이 모르는 척하며 킬리언만을 쳐다보았다.

킬리언 역시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은은하게 웃었다.

그때 분위기를 환기하듯 리제가 찻잔에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건 <마르티네즈>에서 사 온 딸기 홍차예요. 에디트의 입맛에 잘 맞을지 모르겠네요.”

“저번에 주신 차도 맛있었는걸요. 리제의 취향은 믿을 만하죠.”

내가 리제를 칭찬하자 그제야 리제의 웃음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우리 네 사람은 가벼운 잡담을 나누며 한가롭게 차와 티 푸드를 즐겼다.

그 와중에도 나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생각해 보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원작에 나오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는 있는데…… 3단계 예외 조건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건 결국 그 이상의 단계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원작의 결말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뜻 아닐까?’

만약 내가 3단계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고도 죽지 않을 수 있다면, 3단계 예외 조건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이유가 없잖은가.

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리제가 미안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킬리언에게 말했다.

“그런데 킬리언. 죄송하지만 혹시 다음 주 금요일에 저와 같이 르벨마리 거리에 가주실 수 있을까요? 예전에 킬리언과 함께 가서 주문했던 구두가 완성됐다는 연락을 받아서요.”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구나.”

“네. 혹시 바쁘시다면 괜찮…….”

“아냐, 아냐. 같이 가지, 뭐.”

킬리언은 가볍게 수락했고, 리제는 밝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한발 늦게 나를 의식했다.

“아! 혹시 에디트가 불쾌하다면 킬리언이 같이 안 가주셔도 돼요! 호, 혼자 갈 수 있어요.”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귀여웠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태도가 묘하게 껄끄러웠다.

이 제안을 하기 전에 리제와 클리프가 눈을 마주친 걸 봤는데 왜 클리프가 아닌 킬리언에게 같이 가달라고 했을까.

킬리언과 함께 가서 주문한 구두라지만 그걸 찾을 때도 굳이 같이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이상해…… 리제 싱클레어…… 볼 때마다 종잡을 수가 없단 말이야. 아니면 진짜 내가 이상한 건가?’

이제는 이런 생각을 갖는 게 정말 리제의 이상 행동 때문인지, 내가 리제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킬리언의 등짝을 툭툭 치며 ‘그래, 리제 데리고 잘 놀다 와!’ 해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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