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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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소릴 하는군. 그런 건 내 의지 따위가 중요한 일이 아니야.”

“고백이라도 해봤어? 그래도 오래도록 너를 곁에 둔 셰인이잖아.”

“결과를 뻔히 아는 일을 굳이 실행에 옮길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서.”

“사랑은, 그저 상대에게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절절히 기쁜 일 아닌가? 너한테는, 성공하지 못할 일은 전부 무가치한 일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실망이네, 소피아.”

시간을 벌기 위한 이야기였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왠지 속이 아렸다.

“하긴…… 쉬운 일은 아니지. 나도 아직 고백은 못 해봤어. 죽기 전에 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안 됐네. 넌 오늘 여기서 죽을 테니까.”

“글쎄…… 어쨌든 너도 죽기 전에 고백이라도 한번 해봐. 그게 후회가 남지 않는 길일 테니까.”

눈앞에 자꾸 킬리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경멸에 찬 눈빛밖에 보여주지 않던 시절의 모습부터 얄밉게 날 비꼬던 모습, 화내던 모습과 충동에 휩싸인 모습, 그리고 나를 향해 부드럽게 웃는 모습까지…….

‘사랑한다고 고백이라도 해볼 걸 그랬어.’

용기가 없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작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늘 한발 물러선 채 살았다. 원작의 에디트가 사랑을 호소했다가 차갑게 내쳐졌으니 나도 똑같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킬리언은 이미 원작의 킬리언이 아닌데…….

‘여기서 구출되면, 그래서 다시 킬리언을 만나게 되면…… 그때는 고백하자. 거절당하더라도, 내 마음을 전하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거잖아.’

전생에 연애는 몇 번 했지만, 사랑을 고백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연하다. 사랑해서 만난 남자들이 아니라 필요했기에 만난 남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날 좋아해 준다는 것에 안주했던, 그리고 그 마음이 언제 떠날지 몰라 미리 선을 그었던 삶이었다.

난생처음 고백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랐다.

“그런데 넌 기회가 있더라도 고백 따위는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평정심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는 소피아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킬리언 루드윅이 네게 조금 잘해줬다고 착각하는 거 아니지? 그거 다 연극이잖아. 모르고 있었어?”

“……뭐?”

“리겔호프가의 딸에게도 잘해줬다고 주변에 광고한 거지. 그래야 리겔호프가와 싸울 때 어쩔 수 없었다고 오리발 내밀 수 있을 테니까.”

“킬리언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물론 그가 나를 사랑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제대로 속고 있었군그래. 누가 멍청이 아니랄까 봐.”

소피아가 킥킥대며 웃었다. 나를 상처입히고 싶어 한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웃음소리였다.

“우리가 이미 뒷조사도 마친 일이야. 너라는 광고판을 제일 잘 써먹은 사람이 바로 킬리언 루드윅이라고.”

소피아는 내가 가엾다는 듯 혀까지 찼다.

“하긴, 속고 싶을 만큼 잘생긴 남자긴 하지? 고작 그런 육욕 따위에 져서 가문을 배신한 결과가 어때? 마음에 들어?”

“아니야. 킬리언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넌 늘 맞아야 정신을 차리더라.”

그리고 갑자기 채찍이 날아들었다.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다른 쪽 팔뚝이 얼얼해졌다.

“악!”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채찍이 마구 나를 치기 시작했다.

“아악!”

“너만 배신하지 않았으면, 셰인 님이 이토록 힘들어지지도 않았을 거 아니야!”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