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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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나잇값 못 하는 짐승들이 있네.’

전생에서도 숱하게 마주쳐 온 ‘연장자인 남자’들의 수작이었다.

늘 핑계는 비슷했다.

장난이라느니, 딸 같아서, 혹은 조카 같아서 그런다느니…….

심지어 이 인간은 날 루드윅 부인 앞에서 추행함으로써 루드윅 공작가의 위신을 떨어트리려 하고 있었다.

‘일타쌍피라 이거지?’

나는 내 허리 근처까지 다가온 바틀렛 자작의 손목을 턱 잡아챘다.

“한 번 눈치를 줬으면 알아서 몸을 사리셔야죠, 바틀렛 자작님. 그새 말귀가 어두워지셨나요?”

“에, 에디트!”

“아니면, 루드윅 공작도, 그 아들들도 없으니 때는 이때다 싶었나요? 감히 공작가의 며느리에게 함부로 손을 대다니요. 손목이라도 잘리고 싶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너야말로 오래 알고 지낸 삼촌 같은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

“내 아버지도 나를 만지지 않습니다. 하물며 삼촌이라니. 뻔뻔하군요.”

나는 정면으로 맞부딪치면서도 언성이 높아지지 않게 주의했다.

괜히 소리를 지르면 분명히 내가 소란을 피운다고 몰아갈 테니까.

대신 목소리는 낮추면서도 단호하게, 똑바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아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똑똑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작 부인은 나의 곤란을 모른 척 넘어가지 않았다.

“바틀렛 자작.”

나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위엄 서린 목소리.

“고, 공작 부인. 오해이십니다!”

“오해라니요. 조금도 오해하고 있지 않으니 걱정 마십시오.”

“아, 다행이군요. 에디트가 어릴 때부터 좀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서 가끔 소란을 피울 때가 있었거든요.”

이 인간이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내가 뭐라고 쏘아붙이려는데 공작 부인이 내 앞으로 손을 내밀어 내 말을 막았다.

“자작이야말로 오해하고 계시군요.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까부터 내가 봤으니, 에디트가 화낸 이유를 다 알고 있다는 말이었는데요.”

“공작 부인까지 왜 이러십니까? 요새 여자들은 하여간에 무슨 농담을 못 하게……!”

“바틀렛 자작가라…… 제분으로 재미를 좀 봤던가?”

늘 품위 있고 부드럽게만 보이던 공작 부인이 알파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곁에서 대답했다.

“바틀렛 영지와 수도에 각각 대규모 제분소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맥파이 영지에서 밀을 공급받고 있고요.”

“흐음…… 맥파이 영지가 우리 쪽에서 빌려간 돈이 좀 있는데…… 상환 연장 불가 사유가 바틀렛 자작 때문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협박의 규모가 다르다. 고작 상대방 하나 조지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가문, 영지, 거기다 거래처까지 말아먹게 해주신단다. 알파녀는 언제나 옳지.

“그, 죄, 죄, 죄송합니다. 제가, 술이 좀 과했던 모양입니다. 하하하…….”

바틀렛 자작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물러갔다.

그 모습에서 끝까지 눈을 떼지 않던 공작 부인은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동안 저런 작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나는 그저 낮게 한숨을 흘리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내가 직접 당한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원작의 에디트는 얼마나 많은 추행을 겪었을까.

그러고도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겠지.

이런 문제가 생기면 에디트가 음탕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매도당했을 테니까.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