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얘! 많이 아파?”
코를 훌쩍이며 돌아본 곳에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남지 않은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삐쩍 말라서 뺨이 움푹 패고 밀가루라도 한 겹 바른 듯 창백했지만, 눈망울만큼은 정말 예쁜 아이였다.
“흐윽, 아,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는 걱정된다는 얼굴로 수액걸이를 돌돌돌 밀면서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럼 왜 그렇게 울어?”
“시끄러웠으면 미안…….”
“아니야. 나도 자주 우는걸. 혹시 너도 죽는 게 무서워서 그래?”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속이 울컥했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뭐? 왜……?”
그 아이는 놀란 듯 되물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나 아픈 걸 귀찮다고밖에 생각하지 않아. 오빠랑 골수가 일치했는데, 오빠는 나더러 그냥 뒈져 버리래. 흐흑…… 차라리 지금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한테 왜 그런 이야기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늘 드리우고 있는 백혈병 병실에서, 왜 그렇게 경솔한 말을 지껄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는 내 옆에서 한참 말없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왜 살 수 있는데…… 죽겠다는 말을 해?”
정말 작은 목소리였는데 나는 숨을 삼켰다.
“살기만 하면…… 미래를 바꿀 수 있잖아. 물론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기회를 갖는 거잖아.”
“아…….”
“난…… 그 기회조차 없어. 내가 이 병실을 나가는 날은…… 내가 죽는 날이란 말이야. 죽어버리면 난, 고생만 한 엄마, 아빠한테 보답도 못 하고, 친구들도 더 못 보고, 스무 살도 될 수 없는데…….”
그 아이의 예쁜 눈망울에 물기가 어렸다.
“난 네가 정말 많이 부러운데…… 그런 말 하지 마. 살 수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야지. 이대로 끝내지 말고…….”
뭔가를 더 이어 말하려던 그 아이는 환자복 소매로 눈가를 닦은 뒤 다시 웃어 보였다.
“살아 있으면, 그래서 뭔가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하다 보면 분명히 더 나은 상황이 올 거야. 힘내.”
“미안해…….”
나는 나보다 훨씬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골수 이식을 받게 되었다.
내가 오빠의 골수를 이식받고 회복실에서 대기하는데 간호사가 와서 말했다.
“다행히 5인실 자리가 방금 하나 났거든요? 지금 베드 정리 중이니까 여기서 조금만 더 기다리실게요.”
입원실이 없어 하마터면 2인실로 갈 뻔했는데 정말 다행이라며 부모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 역시도 그때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간 입원실은 내가 며칠간 지냈던 그 병실이었고, 다만 내 자리가 ‘그 아이’의 자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저, 저기! 여기 있던 애는…….”
내가 그 아이의 행방을 궁금해하자 엄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 옆구리를 툭 쳤다.
“여기서는 그런 거 물어보는 거 아냐!”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 아이가 오랜 병원 생활을 마치고 나갔다는 걸.
“내가 이 병실을 나가는 날은…… 내가 죽는 날이란 말이야.”
그 목소리가 떠올라 몸이 벌벌 떨렸다.
* * *
마지막 숨이 꺼지던 순간 그 아이는 골수 이식을 받으러 간 나를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더 이상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슬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