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래야지.”
그리고 이틀간, 그는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두통에 시달린 것이다.
그런데 에디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날 밤, 간신히 얕은 잠에 빠진 그를 의심스러운 인기척이 깨웠다.
‘뭐지? 암살인가?’
베개 밑에 숨겨둔 단검에 손을 가져가려던 그는 다음 순간, 자신의 방에 침입한 사람이 에디트라는 것을 눈치챘다.
옅게 풍겨오는 장미 향이 그녀의 발소리보다 먼저 그녀임을 알려왔다.
실신했다가 겨우 깨어났다는 사람이 이 밤에 무슨 일로 왔는지 궁금해서 그는 에디트가 하는 대로 놔두었다.
에디트는 살금살금 침대 곁으로 다가오더니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역시 암살인가, 라고 생각했을 때, 에디트가 천천히 몸을 숙여왔다.
그녀의 달콤한 살냄새가 느껴져서, 킬리언은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뻔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에디트는 애가 타도록 가볍게 그에게 입 맞추었다.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지도 않는, 진득하지도 않은 가벼운 입맞춤.
깊게 잠들어 있었다면 아마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에디트가 입 맞춘 순간 킬리언은 놀라서 눈을 떠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바로 앞에서 눈을 감은 채 입술만 가만히 마주 대고 있는 에디트를 쳐다보았다.
긴 갈색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입술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얇은 눈꺼풀이 천천히 뜨였다.
하지만 에디트는 눈을 뜨고 있는 킬리언을 보면서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마치 그가 깰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미, 미안해요. 그…… 내가 알아서 돌아갈게요. 그러니까…….”
킬리언은 허무한 입맞춤만 남기고 이제 돌아가 보겠다는 에디트를 그냥 놔둘 수 없었다.
‘역시, 몸을 무기로 쓴다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군. 자기가 불리한 것 같으니 날 몸으로 유혹해 보겠다는 거지?’
그동안 느꼈던 원인 모를 죄책감은 순식간에 휘발되고, 분노인지 흥분인지 모를 열기가 아랫배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괘씸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디까지 하나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에디트의 팔뚝을 붙들고 있었다.
“아닌 척은 다 하더니, 이젠 연극마저 못할 정도로 발정이 나셨습니까?”
아니, 발정은 자신이 하고 있었다. 아마도 폭력적이고 1차원적인 욕망일 터였다.
알고 있었지만 그는 습관처럼 에디트를 책망하며 몰아붙였다.
“아니, 저는 그냥 뽀뽀만…….”
킬리언은 소심하게 항변하려는 에디트를 급하게 침대 위로 넘어트렸다.
‘입만 맞추고 돌아가려 했다니,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킬리언은 코웃음 치면서 이 여자가 어떤 수를 쓰는지 똑똑히 확인하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어디, 리겔호프의 꽃뱀답게 나를 만족시켜 보십시오. 또 모르잖습니까. 몸정이라도 생길지.”
“예……?”
킬리언은 당황스러워 보이는 에디트의 가운을 벗기고 저번부터 야하기 그지없다고 느끼던 그녀의 침의 자락 안으로 손을 넣었다.
매끄러운 허벅지가 그의 손길에 바르르 떨었다.
“키, 킬리언! 이래도 돼요?”
“이래도 되냐는 건, 뭘 묻는 겁니까?”
“아니, 그러니까…… 저……로도, 괜찮겠냐고요.”
킬리언의 손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내가 리제를 사랑하는 걸 다 알면서도 내 처지를 걱정해 줄 만큼 이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