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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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할 테면 해봐. 네년이 쓸모없게 되면, 널 죽여서 그 책임을 루드윅가에 물을 거니까.”

콱 막힌 숨통 때문에 눈물이 솟는 와중에도 소피아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녀는 내가 공작가의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처럼 충분히 꾸며낼 수 있을 테고, 그걸 꼬투리 잡아 루드윅 공작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이다.

딸을 아끼기로 유명했던 리겔호프 백작이 제 딸을 죽였을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테니까.

‘이러려고 밖에서는 날 사랑하는 척했던 거구나.’

정말이지 지독한 인간들이었다.

싱클레어 백작가는 차라리 인간적으로 보일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지려 하는 순간 소피아가 내 목을 놓았다.

나는 미친 듯이 콜록거리며 뻐근한 목을 감싸 쥐었다.

“그러니, 죽기 싫으면 여태까지처럼 예쁜 인형 노릇이나 잘해.”

소피아의 목소리가 음산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굴복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학대당해 온 에디트는 소피아가 무서웠는지 몰라도, 나는 그녀가 에디트를 죽이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이 세계에서 에디트를 죽이기로 설정된 건 킬리언 루드윅 뿐이다.

어떻게 죽었는지 설명도 안 된 이따위 엑스트라가 아니라.

“후회할 거야, 소피아.”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또 때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피아는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 * *

킬리언은 연회색의 새 한 마리가 월계수 이파리를 문 자수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라이젠 영지 시찰을 다녀와 보니 마침 에르메니아 백작가에서 매년 여는 바자회 전날이었다.

사실 거기에 대해서는 ‘피곤한데 내일 거길 또 가야 하는구나.’ 하는 정도의 감상뿐이었다.

어머니가 전해주던 소식들을 듣기 전에는 말이다.

“그리고 에디트는 손수건에 새를 수놓았는데, 그게 무슨 색인 줄 아니?”

“제가 그걸 알 리가요. 그게 중요한 문젠가요?”

“후후후. 네 눈동자 색이란다.”

“……예?”

“널 떠올리면서 수를 놓았대. 너무 귀엽지 않니?”

너무나 의외의 대답이었다.

어머니는 에디트가 그 사실을 네게 말하지 말라고도 했다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지만, 킬리언은 에디트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흘렸을까 고민했다.

어쩌면 어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 날 바자회에 도착하자마자 킬리언은 에디트와 리제, 클리프가 모두 바자회 구경을 갔다는 걸 알고 뒤따라갔다.

하지만 뒤늦게 따라간 탓에 이미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에디트와 리제를 목격했다.

막 아는 척하려는 찰나, 웬 여자들의 무리가 에디트와 리제의 앞길을 막았다.

‘브린 백작 부인? 영지에 요양하러 내려갔다더니, 돌아왔나 보군.’

독설로 유명한 부인이었지만 브린 백작가의 위세와 제 사람만큼은 잘 챙기는 성격 때문에 추종자들도 많은 여자였다.

그런데 그 여자가 대뜸 리제더러 사생아니, 애완동물이니 하며 시비를 걸었다.

‘저 여자가 미쳤나?’

그가 막 화를 내며 다가가려는데 발발 떠는 리제 앞을 에디트가 막아서며 나섰다.

“요새 사교계에는 적응을 못 하겠네. 시골 촌부 따위가 바자회를 휘젓고 다니고.”

그 대담한 도발에 킬리언조차 ‘헉.’ 하고 놀라는데 상대편에서 에디트를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막 나간다느니, 리제보다 못하다느니 하는 말이야 사실이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어떤 여자가 내뱉은 말이 킬리언의 심장을 쿡 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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