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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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 일과도 관련해서 딸애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을 뿐이네. 오랜만에 딸을 만나니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더더욱 의심스럽군요. 두 분이 우리 가문의 정보를 나누기로 서로 약속이라도 하신 것 같잖습니까?”

“그, 그게 무슨 말인가? 하하!”

킬리언이 싸늘한 눈으로 나와 그를 번갈아 쳐다보자 리겔호프 백작은 당황해서 싱거운 웃음을 흘렸지만, 킬리언은 조금도 표정을 풀지 않았다.

“에디트의 근황을 알고 싶은데 왜 둘이서만 따로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까? 도대체 무슨 근황을 알고 싶어서요?”

“아, 그, 그런 말이 아니고…….”

리겔호프 백작은 본전도 못 찾고 쩔쩔맸다. 그러면서도 내게 눈짓으로 뭔가를 계속 명령하는 것 같았다.

아마, 네가 뭔가 어떻게 해보라는 뜻이었을 테지.

하지만 이러다 정말로 킬리언이 나를 또 의심하게 된다면 큰일이라, 나는 거기서 잽싸게 내 근황을 알려주었다.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태어난 이래, 그 어느 때보다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를 대하는 내내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저딴 걸 더 이상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었으니까.

리겔호프 백작은 내가 자신의 명령을 완전히 무시하기로 결심했다는 걸 눈치챘는지 순간 얼굴을 굳혔지만, 재빨리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알았다, 에디트. 그럼…… 다음에 보자꾸나.”

그리고 킬리언에게는 아주 정중히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떴다.

‘망할 놈. 아직도 날 제멋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여기는 거지.’

나를 바라보던 눈빛에 깃든 경멸과 분노를, 나는 똑똑히 읽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하지만 그보다 더 분한 건, 내가 나도 모르게 떨고 있었다는 것이다.

뒤늦게 깨어난 에디트의 오래된 기억은 온통 학대로 얼룩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신체적, 정신적 학대는 내가 직접 당한 게 아니었는데도 내 몸을 얽었다.

킬리언의 재킷을 쥐고 있던 손은 땀으로 축축했고, 목이 바싹바싹 말랐다.

‘이제 와서 떨 이유가 뭐가 있어! 바보같이!’

그 인간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킬리언의 옷이나 붙들고 덜덜 떨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소피아에게 그렇게 맞으면서도 뻔뻔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는데, 왜 이제야 긴장이 되는 건지…….

“에디트……? 괜찮습니까?”

킬리언이 나를 불렀다.

“킬, 킬리언…….”

“왜 이렇게 긴장한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 사실은 알고 있다.

난 지금까지도 절대 괜찮지 않았다는 걸.

이를 악물고 버텨왔을 뿐, 나는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잠시 바람이라도 쐬러 가죠.”

킬리언은 제대로 된 대답도 못 하는 나를 데리고 야외 발코니로 나갔다.

그리고 그의 결정은 아주 탁월했다.

싸늘한 바람이 뺨을 때리자 그제야 나는 패닉에 빠질 뻔한 정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나는 한참 심호흡을 한 후에야 굳은 입을 움직일 수 있었다.

“노, 놀라셨죠? 바보같이 굴어서 미안해요.”

“이제 좀 괜찮은가 보군요.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네? 뭐, 뭐가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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