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트가 여전히 ‘악녀 조연’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할 행운 말이다.‘도대체 언제 이렇게 큰 거지? 제기랄!’
지난번 요트 사건 때 에디트가 살아난 것을 보고 눈치챘어야 했다.
킬리언의 눈앞에서 벌어진 사고였기에 킬리언이 구할 수 있었다고만 생각했지, 그게 주연급 캐릭터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이 세계에 리제 이외의 여주인공이 생겨났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젠 정말로 위험해.’
더는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었다.
이번의 실패로 K의 킬리언 지배력은 0에 수렴했고, 다른 인물들은 30% 정도로 떨어졌다.
온 힘을 다 짜낸다면 한 번쯤 더 에디트를 살해하기 위한 판을 짜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컸다.
‘이제 믿을 것은 3단계 예외 조건뿐이야. 에디트가 그 조건을 충족하게 놔둬서는 안 돼.’
상황이 어려워졌다.
에디트를 계속 악녀로 몰아가면서도 그녀가 3단계 조건을 충족하게 해서는 안 되었으니까.
하지만 에디트가 프레드에게 저항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꼴을 보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에디트도 결국 사람이야. 사람이라면 그 조건을 충족할 수는 없을 거야.’
K는 가까스로 씩 웃었다.
* * *
서서히 눈앞이 밝아졌다.
그러나 잠에서 깬 건 아니었다.
‘꿈이구나.’
나는 자각몽을 꾸는 중이었다.
눈앞에는 어두운 색깔의 문이 있었다. 주변을 보아하니 웬 귀족 저택 같았다.
‘여기가 어디지?’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리겔호프 백작……?’
지금보다 한참은 젊어 보이는 리겔호프 백작이었다.
그는 내 앞까지 오더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내가 보고 있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도 그 틈에 그의 뒤를 따라 그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반성은 충분히 했느냐?”
“예…… 죄송해요, 아버지…….”
아…….
제기랄.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고작 열두세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 에디트가 뺨이 퉁퉁 붓고 눈두덩에 시퍼런 멍을 단 채 울먹이고 있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리겔호프 백작을 보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싹싹 비벼가며 빌었다.
나는 이 나이대의 소녀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저렇게 맞을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 집안은 에디트에게만 엄격해서, 그들은 아주 작은 실수에도 에디트를 매섭게 매질했다.
덜덜 떨며 비는 에디트를 한참 내려다보고 있던 리겔호프 백작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에디트를 타박했다.
“에디트. 내가 너한테 몸을 팔라는 것도 아니고, 고작 애교 떠는 짓 좀 하라는 것뿐이었잖느냐. 뭐가 그리 수치스럽다고 기회를 놓쳤어!”
“죄송…… 죄송합니다.”
“그 양반이 어린 소녀를 좋아한다고 해서 일부러 자리를 만들고 기회를 만든 거였단 말이다. 한 번 놓친 기회는 돌아오지 않아!”
“죄송합니다…….”
“쯧. 쓸모없기는.”
도대체 뭣 때문에 애를 잡나 했더니, 아동성애자 앞에서 애교를 떨어보라고 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