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걔를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 시궁창 쓰레기 같은 게 착한 척, 순진한 척하면서 루드윅 공작 부부를 홀리다니…… 진짜 교활하다니까.”
“문제는, 그 교활한 계집이 클리프와 킬리언까지 홀렸다는 거지. 킬리언은 에디트와 결혼까지 한 걸 보니 반쯤은 포기한 모양이지만, 덕분에 리제가 클리프와 결혼할 확률이 더 높아졌어.”
“미쳤어?”
레일라가 입에서 불이라도 뿜을 듯 화를 냈다.
“네가 그렇게 화를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내가 킬리언이랑 결혼하게 되면 걔를 내 윗전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이잖아! 절대 싫어!”
“그러니 에디트보다 리제가 더 문제라고 하는 거지. 게다가 리제가 클리프의 아내가 되면 우리 가문이 공작가의 측근이 되기란 더 어려워지는 거야. 어쩌면 네가 킬리언과 결혼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어.”
레일라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그 계집애는 태어난 것 자체가 죄야. 그런 게 루드윅 공작 부인이 된다고? 말도 안 돼.”
“그러니 네가 킬리언의 옆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그 계집애부터 처리할 궁리를 해야 해.”
싱클레어가 남매들 사이에 말이 없어졌다.
리제를 없애 버려야 하는데 클리프와 루드윅 공작가의 완벽한 비호를 받는 리제에게는 그들의 칼끝을 들이밀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초조하게 소파 팔걸이를 두드리던 레일라가 갑자기 손을 뚝 멈추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에디트 리겔호프를 이용해 보면 어때?”
“무슨 말이야?”
안톤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지만 레일라의 표정은 옅은 미소로 물들고 있었다.
“결혼 전에 그렇게 자랑을 하고 다닌 걸 보면, 에디트도 킬리언에게 반한 게 분명하거든. 그렇다면 그 여자도 리제를 미워하고 있을 거 아냐?”
그 말에 데미안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하긴, 킬리언을 보고 안 반할 여자가 없겠지.”
“그러니까 우리는 에디트 그 여자의 옆구리만 잘 찌르잔 말이야. 그 여자가 리제를 더 미워하게, 그래서 판만 깔아주면 나머지는 그 여자가 알아서 처리하게.”
“흐음…… 너도 가끔은 좋은 생각을 낼 때가 있구나.”
“그러게. 킬리언 문제라면 누나도 머리를 짜내는 건가!”
“너, 말 다 했어?”
서로 닮은 세 남매가 서로 닮은 눈매를 휘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에는 음흉한 속내가 묻어 있어서, 시중을 들던 하녀들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
* * *
‘근신’이라 쓰고 ‘휴가’라 읽어야 할 법한 나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인형 옷 만들어 입히기 놀이도 심드렁해진 내가 한가로이 자수나 연습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에디트!”
“엄마, 깜짝이야!”
킬리언이 갑자기 들이닥친 덕분에 나는 바늘에 손끝을 찔려 기어코 피를 보고야 말았다.
“킬리언! 노크하는 예의는 어따 팔아 먹었……!”
“당신 필체로 쓰인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래도 당신 짓이 아니라는 겁니까?”
그는 내 양 팔뚝을 아프게 잡아 쥐고 나를 흔들었다.
“아! 아프니까 일단 좀 놓고 말해요!”
“이제 곧 아버지께서 부르실 겁니다. 가서 뭐라고 해명할 겁니까?”
그는 다급하고 초조한 얼굴이었다. 내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발견됐다는데 왜 저가 난리인지 모르겠다.
“내가 하지도 않은 짓을 뒤집어씌우려고 애쓰셨다고 할 거예요. 왜요?”
“당신…… 지금 제정신입니까? 아니면 루드윅 공작을 우습게 보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