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얘가 갖고 다니는 것 중에 제일 단위가 낮은 화폐겠네.’
나는 그걸 받고는 앞으로 나가 광대의 모자 안에 지폐를 넣어주었다.
그랬더니 광대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저글링을 하기 시작했고, 뒤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이도 훨씬 더 열정적으로 연주하며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마 이들이 재주를 부려 받은 돈 중에 가장 큰돈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킬리언을 돌아봤다. 그는 날 보며 옅게 웃고 있었다.
광대의 저글링을 망칠까 봐 딱딱하게 굳어서 한 손에는 꽃다발, 한 손에는 사탕을 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그만 내 아내를 놓아주게.”
킬리언이 웃음 띤 목소리로 말하자 광대는 연거푸 감사하다고 말하며 물러났고, 나는 겨우 킬리언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킬리언의 외모에 놀란 듯 계속 우리 쪽을 흘끔댔다.
나는 그가 나를 ‘내 아내’라고 표현한 게 이상하게 간질거려서, 실실대는 입매를 단속할 수 없었다.
왜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걸까.
50세나짜리 길거리 사탕만큼이나 빨리 녹아 없어진 우리의 저녁 시간은 달콤한 뒷맛과 풋풋한 들꽃 냄새를 남기고 저물었다.
“당신은 날 믿지 않으니까 이 말도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고마워요.”
내 방의 문 앞에서, 나는 킬리언을 돌아보며 인사를 건넸다.
“대단할 것도 없는 외출이었잖습니까.”
“모든 게 다 처음이었는걸요. 저한테는 대단한 일이었어요.”
“그렇……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나 행복한 기분을 느껴본 게 언젠지 가물가물했다.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상으로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았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킬리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한 번 더 생긋 웃어 보인 뒤 문을 닫았다.
문이 그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자 그제야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러면 자꾸 욕심내게 될 것 같잖아…….’
결혼 후 맨 처음 다짐했던 것이 자꾸 흔들렸다.
내 책상 서랍에는 ‘가진 것에 감사하기’ 위에 동그라미를 몇 번이나 친 그 종이가 아직도 고이 보관되어 있는데…….
* * *
에디트는 킬리언을 더 돌아보지 않고 문을 닫았기에 그가 뒤늦게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에디트가 보지 못하고 문을 닫았지만 킬리언 역시 다시 그 문을 두드려 에디트를 불러내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하릴없이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린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킬리언은 천천히 자신의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에디트와 한 모든 일은, 그녀에게는 첫 경험들이었고, 킬리언에게는 새로운 경험들이었다.
그저 무난한 데이트가 되길 바라며 골랐던 오페라 <오델리트>부터 그랬다.
오델리트는 워낙 유명한 오페라라 킬리언도 몇 번이나 본 것이었다.
오늘 오페라의 주연 소프라노가 특히 유명한 가수였다는 게 조금 달랐을 뿐, 킬리언에게는 그저 똑같은 경험이 될 게 뻔했다. 함께 간 사람이 에디트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처음에는 이 유명한 오페라조차 모른다는 에디트가 어이없었다. 순진한 척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오페라 극장에서 리겔호프가 사람들을 본 적은 몇 번 있어도 에디트와 마주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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