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은 보면 안 될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명백한 거부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나는 ‘선택과 집중’에서 달라진 나의 노선을 위해 열심히 미소를 날렸다.
그리고 그 노력은 헛된 게 아니었다.
“안녕?”
“아, 네! 아, 안녕하세요?”
“수고 많아요.”
“아…… 예에, 가, 감사합니다.”
주근깨 가득한 어린 하녀 한 명과 낡은 난간을 손보던 중년의 남자 하인이 내게 인사를 돌려주었다.
‘그래, 하나씩, 하나씩…….’
사실은 그들이 내게 대단한 도움이 되어주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내가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조금은 마음이 따뜻해져서 방으로 돌아갔다. 그 기분에 취해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게 실수였다.
“오셨어요, 아가씨?”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소피아의 목소리와 함께 문 닫히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더니, 그녀가 팔로 내 목을 조르며 벽으로 밀어붙였다.
“윽!”
“건방지게 감히 주인님을 배신하시다뇨?”
어찌 된 일인지 방에는 소피아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내게 농락당한 소피아는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난 것 같았다.
목을 조르는 힘이 평소보다 훨씬 강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목이 세게 졸려서 신음도 못 내는 내게 소피아는 음산하게 협박했다.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일하는 곳에서 공작가 주요 영지들의 세금 내역을 훔쳐 오세요.”
그녀는 내가 대답할 기회를 주겠다는 듯 목을 느슨하게 풀었다.
나는 시간을 끌기 위해 한참 기침을 해댔지만 안나가 돌아올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흐윽…… 만약에……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아가씨는 죽어요. 주인님께 허락도 받은 일이랍니다.”
내가 충격이라도 받길 바라는 것처럼 소피아가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인간의 속내는 여기 시집올 때부터 알고 있었으니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날 죽이면 네가 범인인 걸 들킬 텐데?”
“제가 아가씨처럼 멍청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반드시 루드윅가의 짓처럼 보이게 죽여 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그래,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이지는 않을 거란 말이지?
“소피아, 나야말로 너한테 마지막 기회를 줄게. 제발 정신 차려. 너도 여기 있어봐서 이제 알잖아. 공작가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글쎄. 멍청이들밖에 없는 것 같던데요? 거기다 이 집 아들 둘은 사생아 계집한테만 눈이 돌아가 있고.”
“그래서…… 네가 리제의 자수 실에 독을 발랐어?”
“뭐? 그건 아가씨가 한 거 아닌가요?”
역시, 소피아는 내 짓으로 알고 있었다. 소피아가 그 자수 실에까지 손을 뻗칠 기회가 없었던 것도 확실하고.
나는 그녀의 결박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몸부림쳤고 간신히 그녀의 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소피아는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쳐다보고만 있었다.
“난…… 문서를 훔쳐 올 생각, 없어.”
“왜 그렇게 죽지 못해 안달이세요?”
“예언 하나 할까? 내가 돕더라도 리겔호프 백작가는 몰살당할 거야. 네가 사랑해 마지않는 내 오라버니까지도.”
마지막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는지, 소피아는 눈에 불을 켜고 내게 달려들었다.
그녀가 셰인을 사랑한다는 걸 눈치챈 건 그녀가 셰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애틋하게 입맞춤하는 모습을 훔쳐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