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킬리언은 겨울이 오기 전에 영지 시찰을 나가기로 했다.
성안의 위계질서는 점점 제대로 잡히고 있었고, 라이젠 생활도 꽤 익숙해진 상태였기에 시찰을 나가기 딱 좋은 때였다.
킬리언만 나간다면 말을 타고 돌아봤겠지만, 나는 내 눈으로 꼭 영지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싶었다.
킬리언도 날 떼놓고 갈 생각은 아니었는지, 나와 함께 타고 다닐 오픈카…… 가 아니고, 오픈 마차(?)를 제작해 두었다.
우리는 머리 위와 앞쪽이 다 뚫린 작은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영지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밀 파종과 가을 채소 수확이 한창입니다.”
“영지의 최대 생산품은 밀입니다. 품질이 꽤 좋습니다.”
킬리언의 보좌관이 영지의 곳곳을 지날 때마다 설명해 주었다.
파종이 끝나 곱게 정리된 땅이나 실한 알맹이가 영근 채소밭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어떤 곳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열심히 호박이나 당근을 수확하고 있었고, 아직 일할 나이가 안 된 어린애들은 그 주변에서 뛰놀며 깔깔대고 웃었다.
우리가 지나가자 일하던 영지민들이 모자를 벗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응? 저게 뭐지……?’
나는 신경 쓰이는 뭔가를 발견했지만, 아직 영지를 다 돌아본 게 아니기에 입을 다물었다.
마차는 너른 벌판을 지나 민가가 모여 있는 영지의 시가지로 진입했다.
시가지라고는 하지만 수도처럼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선 것도 아니었고, 시장의 형태는 조금 허술했다.
다만, 허술하긴 해도 시장의 크기가 작지는 않았다.
“영지의 주 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 마즈카 거리에 영지 인구의 50%가 몰려 살고 있습니다.”
보좌관의 소개처럼 거리는 꽤 북적거렸고 활기가 넘쳤다.
그냥 구경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지어질 것 같았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상인들, 싸움이나 다름없는 흥정을 하고 값을 치르는 사람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것질 매대와 그 앞을 얼쩡거리는 아이들, 지나가다가 반갑게 인사하는 이웃들…….
그러나 나는 거기서도 신경 쓰이는 뭔가를 발견했다.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수확이나 파종으로 바쁜 벌판에서도, 이 시끌벅적한 시장에서도, 나무 상자 안에 들어가 맥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 아이들의 어미로 보이는 사람들은 간간이 그쪽을 흘끔대고는 있었지만, 일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신경은 못 쓰고 있었다.
“저기, 알텐스 경. 저 아이들은 뭔가요? 아까부터 저렇게 아이들을 상자 안에 넣어 둔 사람들이 보이던데…….”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아기 침대 대용으로 만들어 놓은 건가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아이들의 나이는 제각각이었다.
그 아이들은 뛰어노는 다른 아이들을 부럽게 바라보고 있기도 했고, 그저 아무 생각 없어 보이기도 했다.
“저 아이들은 아픈 아이들입니다. 농번기인 요즘은 집안의 아이들까지 일해야 하니, 돌봐 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나온 거죠.”
“아……!”
“전염병은 아닙니다. 아직 영지에서 전염병이 보고된 적은 없으니까요. 아마 선천적으로 어디가 불구라든가, 크로소 병처럼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병에 걸린 아이들이죠.”
나는 그제야 그 아이들에게 시선이 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의 표정이 꼭…… 내가 전생에 소아암 병동에서 본 아이들의 표정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영지민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은 없나요?”
“병원이요? 의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의원이요. 아니면 최소한 약사라도…….”
킬리언의 보좌관인 알텐스 경은 내 질문에 재차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