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인재가 필요했던 우리에게, 리넌이 루드윅 공작가에서 일을 그만두려 한다는 소식은 상당한 희소식이었다.
나와 킬리언은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최고 대우를 약속하고 라이젠의 가능성을 강조하며 그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공작가의 일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라이젠으로 내려온 리넌을 맞이하며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우리한테야 잘된 일이지만, 리넌은 공작가를 그만두는 게 아쉽지 않았어요? 황궁이 아니고서야, 그만한 월급 주는 데는 또 없잖아요.”
“글쎄요. 이미 모아 둔 게 꽤 돼서 그런지는 몰라도, 돈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리넌은 여전히 감정 표현에 인색했지만, 그 말을 하던 순간에는 어딘지 지쳐 보였다.
“왜, 공작가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킬리언이 걱정스럽게 묻자 그는 고민하다가 가방에서 자신의 일기장을 꺼내 킬리언에게 건넸다.
“제가 일일이 설명하자면 길어지니, 차라리 제 일기장 내용으로 확인해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나와 킬리언은 자기 일기장을 무슨 보고서처럼 꺼낸 리넌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우리는 우리가 루드윅 공작가를 떠난 날 이후부터의 일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 * *
「-1825년 9월 15일
클리프 도련님의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킬리언 도련님과 에디트 아가씨께서 라이젠으로 떠나셨다. 안나 양까지 데리고 가시니 집 안에 두 분의 흔적이 싹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두 분이 떠난 뒤 공작저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항상 화기애애하던 공작 각하 내외분과 리제 아가씨의 사이가 어딘지 데면데면해진 것 같다.
공작 부인께서도 리제 아가씨를 잘 찾지 않으시고, 공작 각하께서는 한숨과 술이 느신 것 같다.
얼마 전의 결혼식 때는 킬리언 도련님 내외분이 계셔서 겉으로나마 분위기가 좋았는데, 이제는 빈말로도 좋아 보인다고 할 수 없다.
클리프 도련님께서는 본격적으로 후계 승계를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하셨다.
-1825년 11월 10일
전에는 방에서 조용히 지내시던 리제 아가씨가 최근 부쩍 자신을 드러내고 계시다.
파티 참석이 느시며 날이 갈수록 옷차림이 화려해지시더니, 이번에는 12월에 있을 연말 파티를 본인이 준비하겠다고 선언하셨다.
그 문제 때문에 클리프 도련님과도 조금 언성이 높아진 것 같던데, 어쨌든 리제 아가씨께서 12월 파티를 준비하기로 결정 난 모양이다.
아직 공작 부인이 정정하신데 며느리가 벌써 가문의 안주인 노릇을 하려 든다고 뒷말이 많다.
공작 부인 역시 심기가 불편하신 듯 말씀이 적어지셨다.
나도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슬슬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할 때인가.
-1825년 12월 31일
어제, 오늘 열린 공작가의 연말 파티는 내가 여기서 일해 온 이래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리제 아가씨 말씀으로는 황제의 최측근이 된 루드윅 공작가의 위세를 제대로 보여 줘야 한다는데, 글쎄…… 여태 이런 겉치레 없이도 루드윅 공작가는 제국 최고의 가문이었다.
공작 각하와 공작 부인께서는 언제나 그렇듯 여유롭고 태연한 모습이셨지만, 늦은 밤 그분들을 방까지 안내하고 돌아온 집사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던 것을 보면 아마 두 분의 심기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리제 아가씨는 아주 즐거워 보이셨다.
카트린 전하께서도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 주신 데다가 파티의 주최자로 소개되어 많은 관심을 받으셨으니까.
리제 아가씨는 클리프 도련님 이외의 남자분들과도 여러 번 춤을 추셨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클리프 도련님의 표정이 안 좋아져서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