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먹지 못해 약해졌던 몸도 점점 좋아졌고, 시도 때도 없이 어지럽던 것도 나아졌다.
사건의 결과가 들려온 건 내가 순조롭게 체력을 회복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가 내 방을 찾아와 안나의 귀에 대고 뭔가를 얘기하고 갔고, 안나는 그 얘기를 다시 나에게 해줬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몇 포착되었지만 리제 아가씨께서 일을 크게 만들기 싫으시다며…….”
“또 묻어버리재?”
“……네.”
“거참 희한하네…….”
정말로 희한하다.
복숭아 파이 사건을 묻어줬을 때는 리제가 고맙다고밖에 생각하지 못했는데, 리제가 이런 사건을 계속 없었던 일로 하자고 부탁하는 건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구제하기 위해서?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사이 킬리언을 통해 듣게 된 거지만, 내가 복숭아 파이 사건이 끝나자마자 리제를 독살하려 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은 클리프와 공작마저도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번 사건에서 나는 용의선상에서 살짝 빗겨나 있었다.
그럼 단지 공작가 내부에서 자신과 관련된 사건이 커지는 게 부담스러워서?
흐음. 그건 그럴 만하다.
리제는 아직 이곳의 손님이었지, 가족이 아니었으니까.
‘싱클레어가가 벌써 나오면 안 되니까 원작의 흐름이 리제에게 이 사건을 묻게끔 유도했을지도 모르지.’
거대한 음모론이 하나.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클리프의 태도도 설명할 수 없다.
리제의 안위에 대해서만큼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클리프다. 아무리 리제의 부탁이라 해도 리제의 목숨이 직접적으로 위협받은 사건에 대해 이렇게 간단히 묻을 수가…….
‘만약 그렇다면 원작의 흐름이라는 그 힘에 대항한다는 게 의미가 있는 건가?’
나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허무하고 맥 빠지는 이야기이기도 하거니와, 꿈에서 나에게 게임의 룰을 설명해 주듯 하던 목소리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누군가가 나를 가지고 게임…… 같은 걸 하는 거야. 다만, 내가 이야기에 개입하고 이야기를 바꿔나갈 수 있는 단계가 존재하는 거지.’
꿈속의 목소리가 말했다.
나는 1단계의 예외 조건을 충족시켰기에 예외 상황을 얻었다고.
그러나 3단계 예외 조건을 충족시키기 전에는 나에 대한 진실을 밝힐 수 없다고.
나, 그러니까 에디트에 대한 진실은 거의 반전에 가깝다. 그런 사실까지 알릴 수 있다는 것은 이 이야기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변화를 일으키려면 3단계의 예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고, 아마도…….
‘단계가 지날수록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진다는 뜻일 거야……!’
주먹이 절로 꽉 쥐어졌다.
몇 번이나 다른 가정을 해보고 생각해 봤지만, ‘단계’라는 게 존재한다는 건 그 이유밖에 없는 것 같았다.
문제는, 1단계가 그랬듯, 2단계와 3단계의 예외 조건이라는 게 뭔지 나는 알 수 없다는 거다.
그야말로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을 것을 바라야 하는 상황이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악랄해. 내가 발버둥 치는 꼴을 보는 게 즐겁다는 거잖아?’
내가 하염없이 생각에 빠져 있는데 다시 누군가의 방문을 받은 안나가 다가와 속삭였다.
“아가씨의 근신이 풀렸습니다. 내일 오전에는 필치 경의 사무실로 나가셔도 된다고 합니다.”
“고마워, 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