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볕을 쬐거나 차를 마시며 자신의 평화를 만끽하는 것 같았다.그런 그녀가 다른 영애들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아랫사람들을 대할 때 그어놓는 ‘선’이 없었다.
귀족을 상대하는 하인들이라면 누구나 그걸 느낀다.
그들은 평민들을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너그럽고 자비로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랬다. 그들은 언제나 선을 그었다.
하지만 에디트는 아니었다.
“같이 먹자.”
그녀와 처음으로 다르서스 거리에 나왔을 때, 에디트는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스스럼없이 안나와 음식을 공유하려 했다.
하인과 같은 접시의 음식을 먹다니, 귀족이라면 기겁할 일이었다.
“왜 안 먹어, 안나? 이거 싫어해?”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제가 어떻게 아가씨의 음식을 먹겠습니까.”
“어? 그럼 나 혼자 이걸 어떻게 다 먹어? 이것도 먹어보고 싶고, 저것도 먹어보고 싶은데 혼자 다 먹지는 못하니까…… 같이 먹으면 좋잖아.”
“불쾌하지 않으세요?”
“어어? 내가 왜?”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뜬 에디트를 보며 안나는 이 아가씨에게 ‘선’이라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가씨께서 괜찮으시다면, 저도 괜찮습니다.”
“……나, 병 안 걸렸어. 나랑 같이 먹어도 병 같은 거 안 걸릴 거야.”
하인이 자신을 꺼릴까 봐 걱정하는 주인이라니, 10년째 하녀 일을 해오고 있는 안나도 처음 보는 타입의 귀족이었다.
고작 그 정도가 특이하다고 여겼는데…….
“아가씨…… 왜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까?”
멍으로 뒤덮인 에디트의 등을 봤던 날의 충격이 지금도 잊히지 않았다.
우유를 풀어놓은 것처럼 뽀얗고 매끄러워야 할 등이, 처참하도록 엉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것도 아마, 친정에서 보낸 하녀에 의해서 말이다.
“그걸 어떻게 말해?”
허탈한 미소까지 섞인 목소리로, 에디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다.
‘내 잘못이야…… 아무리 내색하지 않으셨다지만, 주인이 이렇게 될 때까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10년 동안 쌓아온 하녀로서의 자부심이 와르르 무너졌다.
뭔지 모를 감정이 울컥 치솟는 걸 간신히 내리누르며 그녀의 등에 약을 발라주는데, 그제야 에디트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아가씨…….’
악녀라던 에디트는 오히려 안나가 모셨던 사람 중 그 누구보다 약하고 참기만 하는, 조용한 일상을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리고 리제와는 달리, 정말로 운이 없는 사람…….
안나는 그때 처음으로 에디트의 손을 토닥거렸다. 하녀 주제에 건방지다는 소릴 들을지도 몰랐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온 위로였다.
그리고 에디트는 화를 내지도, 크게 울지도 않은 채 그저 떨리는 숨을 내쉬었을 뿐이다.
그 뒤로 안나는 자신이 에디트에게 그어놓았던 선을 지웠다.
그녀에게 에디트는 자신이 지켜줘야 하는 연약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랬기에 에디트와 킬리언의 사이가 좋아지는 게 기뻤고, 에디트가 부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기에 하필 리제가 킬리언을 찾기 시작했다.
‘여태 킬리언 도련님의 사랑을 모른 척하다가, 왜 이제야……!’
그래서 주제넘은 참견이라는 걸 알면서도 에디트에게 리제의 일을 일러바쳤는데 에디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