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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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흐름이 약해져서 나와 리제 사이가 점점 평범한 동서지간처럼 변하는 건가?’

이건 너무 긍정적인 생각일까?

‘아니면 리제의 음모인가?’

이건 또 과한 생각 같다. 그 블링블링한 거리에서 나한테 무슨 짓을 벌일 수 있다고…….

나 혼자 혼란과 의심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데 리제가 생긋 웃으며 덧붙였다.

“사실은, 루드윅 공작 각하께서 제게 부탁하셨어요. 에디트가 영지로 내려가기 전에 번화가에 데려가서 에디트가 사고 싶은 건 다 사게 해주라고…….”

“저, 정말요?”

“네. 사실 쇼핑 끝나면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루드윅 각하께서 에디트에게 많이 미안해하고 계세요. 그걸 에디트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는 아직 어려우신가 봐요. 각하를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 무뚝뚝한 루드윅 공작이 내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니.

하긴, 건국제 때도 내게 칭찬 한마디를 건네지 않았던가!

‘정말로 원작이 많이 바뀌긴 했구나! 킬리언보다 더 마음 돌리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킬리언이 아닌 리제에게 부탁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킬리언이 날 데리고 나가서 쇼핑한다면 그건 킬리언이 사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리제가 날 데리고 나가서 쇼핑을 시켜준다면, 그 자금이 루드윅 공작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그걸 눈치채고 저에게 마음을 풀어주길 바란 거겠지.’

호랑이 같은 아저씨가 초조하게 마음 썼을 것을 생각하니 순식간에 입매가 풀어져 버렸다.

‘루드윅 공작이 시킨 일이라니, 별일 없겠지?’

우리 둘이 나가게 된다면 우리의 호위는 루드윅 공작가의 기사들이 맡게 될 테고, 그들의 ‘감시’하에 놀게 될 테니 큰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르벨마리 거리도 구경해 보고 싶기는 했으니…….’

킬리언과 부츠를 맞췄을 때 잠깐 들르기는 했지만 르벨마리 거리를 제대로 구경하지는 못했다.

아기자기하게 예쁜 가게들이 많다니 정말 로판 세계스러울 것 같아서 궁금하기는 했다.

“그럼, 그럴까요?”

“정말요? 와, 신난다!”

리제가 정말 기쁘다는 듯 두 손을 맞잡으며 밝게 웃었다.

“그런데…….”

“네?”

“그날 나갈 때, 저랑 리제랑 또 누가 가나요?”

“제 하녀랑 기사님 한 분이요.”

으음, 그건 위험해.

내가 아무 짓도 안 했다는 걸 증언해 줄 사람이 좀 부족한 느낌이라고.

“제 하녀랑 기사님을 한 분 더 모셔갔으면 좋겠어요. 만약의 일이 생기면 기사님 두 분은 계셔야 하니까요.”

그러자 리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의 일이 생기다뇨? 르벨마리 거리는 정말 안전한 곳인걸요. 그래서 거기서는 아무도 기사를 데리고 다니지 않아요.”

앗! ‘만약의 일’ 운운하는 건 또 내가 뭔가 음모를 꾸미는 것처럼 보이려나?

“아, 그, 그래요? 그럼…… 안나까지만 데려가죠, 뭐.”

“그래요. 짐을 들어줄 사람도 필요하니까요.”

우리는 이틀 뒤에 나가기로 약속하고 자리를 파했다.

그리고 그날 밤, 황궁에 다녀온 킬리언은 내 방에 들러 내 하루가 어땠는지 물었다.

‘킬리언이 내 일상을 묻다니, 누가 보면 서로한테 단단히 빠진 신혼부부 같겠네.’

나는 실실 웃으면서도 고분고분 오늘 하루 일을 얘기해 주었다.

“모레, 리제랑 르벨마리 거리에 놀러 갔다 오기로 했어요. 각하께서 리제에게 부탁한 일이라지 뭐예요? 제가 사고 싶은 건 다 사라고 하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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