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공작 부인이 나를 그녀의 집무실로 불렀다.
집무실에는 그녀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에디트.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다.”
“고생이랄 건 없었어요. 방에서 편히 지냈는걸요.”
“마음고생이 몸 고생보다 더 힘든 법이지 않니.”
나는 그 말까지 부정할 순 없었다.
괜히 코끝이 찡해져서 크게 숨을 들이켰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저는 정말로 문서를 빼돌리지 않았습니다. 제 목숨도 걸 수 있어요.”
부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믿어주실 걸 알아요. 근신이 더 늘어난대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에디트.”
그녀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잡았다.
“믿는다. 널 믿어.”
이런.
이 상황에서 저런 말 들으면 눈물샘 터지는데…….
“흐윽…… 흑…….”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정말로 고생했다, 에디트.”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어요…….”
“난 믿는다. 네가 날 도와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도, 어떻게든 이 집에서 적응하려고 노력한다는 것도, 난 다 알아. 어떻게 그걸 모르겠니. 나도 과거에 다 겪은 일인데…….”
그녀는 같은 며느리의 입장으로 나를 이해하고 있던 것이다.
결혼하고 생판 모르는 집에 와 살면서 어떻게든 호감을 얻고 적응해 나가려고 노력했던 나날은 그녀의 인생에도 크게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누가 이런 질 나쁜 장난을 쳤는지는 몰라도, 그게 네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안다.”
“흑, 흐윽, 고, 고맙습니다…….”
이 망할 세계에 떨어진 후 처음 얻은 ‘이해’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좀 더 어른스럽게 대답하고 싶었는데, 어딘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토닥토닥 두드려 주는 손에 매달려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나는 한 가지 희망을 떠올렸다.
‘어쩌면…… 공작 부인이라면 믿어줄지도 몰라.’
공작 부인이라면 리겔호프가에서의 내 처지를 털어놓아도 믿어줄 것 같았다. 그러고도 날 내쫓지 않아줄 것 같았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나를 이해해 준다면 이 상황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부인에게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님. 저는 사실…….”
“그래, 에디트.”
“저는 리겔호프가에서…… 사실은……!”
“……에디트?”
“어윽…… 허억…….”
“에디트! 왜 이러니! 에디트!”
이상한 일이었다.
내 처지에 대해 털어놓으려는 순간, 눈앞이 노래지면서 숨이 턱 막혔다.
혀가 움직이지 않고 이명이 울리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프더니 갑자기 모든 게 뚝 멎으며 나는 암전에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후, 적막하던 암흑 어딘가에서 아침 뉴스의 아나운서처럼 정갈하고도 무감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디트 리겔호프는 3단계 예외 조건을 충족할 때까지는…….]
처음에는 웅웅거리는 것 같더니, 내가 정신을 집중하자 목소리는 점차 또렷해졌다.
[에디트 리겔호프는 3단계 예외 조건을 충족할 때까지는 자신에 대한 숨겨진 설정을 밝힐 수 없습니다.]
똑똑히 알아듣기는 했지만 그 뜻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뭐라고? 3단계 예외 조건? 그게 뭔데?’
하지만 아무도 그걸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그저 무감정한 목소리가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