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30 0 0
                                    


“이거…… 희망적인 거겠지?”

킬리언의 마음에 내가 얼마나 침투했는지는 모른다.

그의 마음은 아직도 리제가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고, 나는 아마 신경 쓰이는 이물질 정도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 작은 관심이 내 목숨을 살릴 수도 있다.

‘이래저래 귀찮고 의심스럽고 짜증 나지만, 그래도 죽이는 건 너무한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의 관심과 애정이면 돼! 나한테 그 정도 애정만 주라.’

더 큰 관심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 작은 소망을 기도하며 나는 안나를 반갑게 맞았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소피아의 썩은 듯한 얼굴이 짜릿했다.

* * *

에디트가 구타 없는 저녁을 맞이하고 있을 때, 루드윅 공작의 집무실에서는 한바탕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 여자의 말대로 싱클레어 백작가가 요새 잠잠하기는 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야.”

“에디트가 범인일 거라는 생각 역시 추측일 뿐이지. 게다가 에디트 말대로, 이건 너무 즉각적이잖아. 에디트는 곧바로 자기가 범인으로 지목될 일을 벌일 만큼 멍청하지 않아.”

“하지만 그 자수 실에 손댄 사람이 따로 더 있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가 범인을 못 찾아냈을 뿐이지, 형! 리제 일이라니까 갑자기 바보라도 된 거야?”

킬리언은 에디트의 기분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로 반박해도 클리프는 에디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자수 실에 손댄 사람을 따로 더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에디트가 범인이라면, 에디트가 독을 바른 것을 발견하지도 못했는데 왜 에디트가 범인이라는 건가.

클리프는 마치 세뇌라도 된 것 같았다.

“어쨌든 난 이번 일이 에디트 짓은 아니라고 봐. 리제의 방이 비었던 시간 동안 누가 들어와서 이런 짓을 벌였을지 모르는 일이야.”

“그랬다 쳐도 왜 하필 그 자수 실이었겠어?”

“리제가 손댈 만한 것에 독을 발랐겠지! 자수 실이라면 상당히 오래 손 닿는 물건이니까 적당하다 생각했을 수도 있고!”

“너무 비약이 심하지 않아?”

“에디트가 준 자수 실에 독이 발려 있었다고 에디트를 범인으로 모는 것이야말로 비약이 심한 거지. 게다가 우리가 에디트 주변에 깔아놓은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독을 구해서 발랐다고? 루드윅가의 감시자들이 그렇게 무능한가?”

킬리언은 제 형을 답답해했지만, 그의 설득이 전혀 소용없는 건 아니었다.

클리프는 어떨지 몰라도 루드윅 공작은 단단한 껍질처럼 그의 생각을 감싸고 있던 확신을 서서히 깨트렸다.

“킬리언 말도 일리가 있다. 에디트나 그 아이의 하녀가 감시의 눈을 피해 독을 입수했다고는 보기 어려워.”

“소피아라는 그 하녀가 갖고 들어왔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 복숭아 파이 사건 이후로 그 하녀의 짐은 이미 다 샅샅이 확인했다. 그 하녀는 모르고 있겠지만.”

결국 클리프도 한발 물러났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리제 역시 에디트의 편을 들었다.

“설마 그동안 아픈 몸 추스르기도 힘들었을 에디트가 그랬겠어요? 게다가 그 선물을 전해줄 때 제 방에는 킬리언도 와 있었어요. 에디트가 킬리언 앞에서 그런 끔찍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줬을 리 없어요.”

아직도 입술이 새파란 리제를 보며 클리프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에디트 그 여자는 싱클레어가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며 너를 해코지하는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증거는 없지만 조사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

그 말에 리제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괜히 저 때문에 공작가의 인력을 낭비하는 걸 바라지 않아요. 다행히 치료도 잘 되고 있잖아요.”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