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베르트? 돈만 많은 그 사내 말입니까?”“오페라의 감동과는 별개로, 라슬로는 아주 나쁜 새끼예요.”
“뭐라고요?”
“그는 사랑을 시험했어요. 오델리트의 처지가 어떤 줄 알면서도 그 사랑을 시험해 보느라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죠. 개자식.”
내가 내뱉은 욕설에 킬리언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욕설을 취소할 생각이 없었다.
킬리언은 겨우 충격을 가라앉히고 내게 또 물었다.
“하지만 정말 사랑했다면, 고작 돈의 유혹에 흔들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킬리언. 당신은 돈이 없어본 적 없죠?”
“……그렇긴 합니다만.”
“고작 돈이라고 하기에는…… 돈으로 해결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고요.”
나는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델리트를 이해할 수 있었고, 라슬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오델리트의 결혼에는 가문의 존망이 걸려 있었어요. 자신의 사랑에만 매달려 모든 걸 내팽개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요.”
“하지만…….”
“당신이야말로 그 고통을 잘 알잖아요, 킬리언.”
내 대답에 킬리언이 얼어붙듯 멈췄다. 괜히 그의 상처를 후벼팠나 싶어서 나는 얼른 말을 돌렸다.
“극에서는 휴베르트를 아주 못된 놈으로 몰고 갔지만, 사실 휴베르트야말로 오델리트를 사랑한 남자죠.”
“그는 이미 다른 남자와 열렬한 사랑에 빠진 오델리트를 돈으로 겁박해 빼앗은 거잖습니까?”
“그래요. 그는 오델리트가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런데도 오델리트를 얻기 위해 노력했잖아요. 그만큼이나 부자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오델리트만큼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얻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건…….”
“아마 라슬로가 오델리트에게 복수하려는 듯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면, 휴베르트와 오델리트는 평범하게 행복한 부부로 살아갈 수 있었겠죠.”
처음으로 킬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오델리트가 마지막에 자결한 건 아주 바보 같은 짓이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있을 법한 일도 아니고요. 이 극의 작자는 남자일 거라는 데 제 목을 걸겠어요.”
“당신은 자기 목숨을 너무 함부로 거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맞습니다. 극의 작가는 남자입니다.”
“그러니 여자가 후회해서 자결할 거라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여자는 말이죠,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고요.”
내가 씩 웃어 보였지만 킬리언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볼 뿐 웃지 않았다.
‘내가 너무 나댔나?’
괜히 속이 찔끔했다.
어쩌면 아까 킬리언의 상처를 건드린 게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얼른 분위기를 환기해야 했다.
“이제 나가볼까요?”
“……그러죠.”
우리는 흥분감이 가시지 않은 오페라 극장을 나란히 빠져나왔다.
그러고 있으려니 정말 평범하게 데이트를 나온 커플처럼 느껴져서 속이 간질거렸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거리로 나선 킬리언은 날 돌아보며 물었다.
“이만 저택으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거리를 좀 구경할까요?”
어? 날 더 데리고 다녀줄 모양이다!
“거리를 구경하고 싶어요!”
“설마, 거리를 구경해 본 적도 없는 건 아니시겠죠?”
“그건 아니지만…… 당신과는 처음이잖아요.”
그는 그제야 조금 풀린 얼굴로 내게 팔을 내밀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그의 팔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단단한 팔뚝이 직물 아래로 느껴져서 괜히 심장이 콩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