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킬리언 입에 묻었다는데 제수씨는 왜 입을 가리고 그러십니까?”
앗…… 낚였다…….
킬리언도 민망했는지 얼굴이 벌게졌다.
“어지간히도 할 일이 없나 보지? 쓸데없는 농담을…….”
“여기 올 때부터 네가 제수씨한테서 눈을 못 떼길래, 한 번은 놀리고 싶더라고. 하하!”
클리프는 가볍게 웃다가 킬리언의 귓가에 대고 속닥거렸다.
“랭스턴 대공이 납셨어. 지금 그 주위로 대공의 지지자들이 몰려들고 있는데, 거기에 리겔호프 백작도 끼어 있어. 제수씨 잘 챙기라고.”
농담기는 금세 사라지고 클리프와 킬리언의 얼굴에는 매서운 기색이 어렸다.
“리제는?”
“황녀 전하께서 데려가시고는 돌려주질 않으시네.”
“싱클레어 백작가는 어쩌고 있는데?”
“여전히 지질하지. 그런데 묘하게 리제보다는 너랑 제수씨를 더 주의 깊게 살피는 것 같더라.”
엇,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구나.
싱클레어가가 자수 실 사건의 진범이 아닌지 더 의심스러워지는데?
“알았어. 형은 리제 잘 챙겨.”
“너나 잘해라.”
클리프는 킬리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뒤 멀어져갔다.
‘클리프가 리제 없이 혼자 돌아다니니까 되게 이상하네. 리제를 황녀가 데려갔다고 했지? 그럼 그 에피소드인가?’
의아해서 기웃거려 봤더니 연회장에서는 마침 원작에서 나왔던 에피소드가 진행 중인 모양이었다.
카트린 황녀는 리제를 제 곁에 붙여두고 다른 영애들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역시 그렇구만. 여태 리제를 사생아라고 무시하던 영애들을 다 모아서 고개 숙이게 만든 에피소드!’
그녀들은 황녀에게 인사를 올리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리제에게 머리를 숙이게 된 꼴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원래 황녀를 수행하는 영애는 황녀보다 높은 사람 말고는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게 법도였으니까.
게다가 이게 은유하는 바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곧 클리프의 아내가 될 리제는 저 영애들 중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리제가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는 사이다 이벤트였지.’
이제부터 리제에게는 사이다 팡팡 터지는 일만 남은 거다.
‘그중 하나가 리겔호프 백작가, 그리고 내 목이 잘리는 일이고.’
심장이 쫄깃해지는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킬리언이 갑자기 내 어깨를 감쌌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내 옆에만 있으면, 누구도 당신을 해코지하지 못할 테니.”
따뜻한 체온이 옷감 너머로 전해져 온다.
그리고 전해져 온 건 체온뿐만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파르르 떨리는 것 같던 속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고마워요, 킬리언.”
나는 크게 심호흡하고 그와 함께 연회장의 홀 안으로 들어섰다.
카트린 황녀는 리제를 제 옆에 두고 다른 영애들에게 굴욕을 맛보게 한 뒤 그들에게 다가간 클리프에게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리제를 되돌려 주었다.
전에는 클리프를 짝사랑하던 황녀가 리제를 두고 클리프와 기 싸움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리제가 황녀 전하께 꽤나 시달린 모양이네요. 저러다 쓰러질라.”
내가 리제를 걱정하자 킬리언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더니 내 귓가에 대고 물었다.
“황녀 전하께 인사드리고 싶으시다면 제가 부탁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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