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럴 거라면 세세한 부분들이 바뀐 게 말이 안 돼. 누가 거기다 독을 묻힌 거야!’하지만 왜 내가 준 자수 실이어야만 했을까? 왜 나를 범인으로 몰아야만 했던 걸까?
“킬리언. 지금 당장은 내가 의심스럽겠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세요. 내가…… 설마 그렇게까지 멍청하겠어요?”
킬리언도 말이 없었지만 어금니를 꽉 물고 있는 것을 보니 간신히 화를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침착하게 킬리언을 설득해야만 한다.
“안 그래도 복숭아 파이 사건 때문에 다들 나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내가 그런 짓을 벌일 것 같아요?”
킬리언은 내 말에 동조해 주지 않았다.
하긴, 나도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데 남들은 오죽할까.
“나도 당신을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게 도대체 몇 번쨉니까? 당신을 의심하지 않게 해줄 수 없습니까?”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와 킬리언의 바람이 정확히 일치했으니까.
“저도 의심받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절 감시할 하녀들을 더 붙여주세요. 그럼 되겠죠?”
아니나 다를까, 소피아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끼어들었다.
“아가씨! 감시라뇨!”
“이렇게 해서라도 난 내 결백을 입증하겠어! 게다가 감시랄 것도 없지. 난 잘못한 게 없으니까. 내 입장에서는 하녀를 늘리는 것뿐이야.”
소피아가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흥! 내가 언제까지고 너한테 휘둘릴 줄 알았냐?
“킬리언. 부탁이에요. 그조차도 하지 않고 저를 의심하지는 말아주세요. 만약 달라지는 게 없다면, 저야말로 공작가를 의심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지금 바로 안나를 다시 부르도록 하죠.”
“좋아요.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킬리언.”
킬리언은 지금 이 순간 내가 그에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드디어 소피아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킬리언은 앉은 자리에서 집사를 불러 안나를 다시 나에게 배정하도록 했다.
그는 자기가 잠시라도 자리를 뜨면 내가 소피아와 뭔가 계획을 세울 거라 생각하고 곧바로 안나를 불렀는지 몰라도, 나로서는 잠깐 사이에도 벌어질 수 있는 소피아의 폭행을 피한 셈이었다.
‘정말로 고마워요, 킬리언.’
나는 의도치 않게 날 구해준 킬리언에게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리제가 중독된 사건의 최대 용의자는 여전히 나였으니까.
“수예 상인은 조사해 보셨나요?”
“지금쯤 잡아들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무작위로 사람을 중독시키려 했겠습니까? 그걸로 먹고 사는 사람이?”
“하긴 그렇죠…… 제가 실을 리제에게 선물한 뒤, 그 실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나요?”
“리제의 방에 드나든 사람이라고 해봤자 리제의 측근 하녀, 클리프, 나, 어머니 정도입니다. 아주 잠깐, 리제의 방이 비었던 적이 있긴 합니다만, 자수 실을 찾아 독까지 발랐다고 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전혀 가능성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어쩌면 액체로 된 독을 자수 바구니 위로 뿌렸을 수도 있고요.”
킬리언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킬리언.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절대 아니에요. 만에 하나 내가 누군가를 해치려 마음먹었다면, 이런 식으로 금방 들킬 짓은 벌이지 않아요.”
“그것참 긴장되는 선언이군요.”
“얼마든지 긴장하세요. 어쨌든 나는 말이에요, 누군가가 나를 희생양 삼아서 안전하게 리제를 해코지하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