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지쳤어요. 내 결백을 주장하는 것도, 거짓말쟁이로 매도당하는 것도…….”“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살고 싶어졌어요?”
내가 죽으려고 했던 게 못마땅한 건지, 살고 싶어진 게 못마땅한 건지 잘 모르겠다.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난 착실히 대답했다. 탕파를 얻어야 했으니까.
“킬리언이 날 믿어줬으니까요.”
“킬리언…… 그래, 킬리언이 문제였지, 늘…….”
“리제……?”
방금은 정말로 이상했다.
소름이 돋을 만큼 리제답지 않은 말투와 발언이었다.
“그런데 어쩌지? 넌 또 거짓말쟁이로 매도되고 범인으로 의심받을 텐데.”
“리……!”
“그러니까, 그냥 죽을 생각만 해. 넌 오늘 여기서 죽어야 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리제가 왜 저런 이상한 소릴 하지?
아니, 왜 갑자기 품에서 단도는 꺼내고 난리야!
“리제, 왜, 왜 그래요?”
내가 철창에 붙은 몸을 뒤로 물리는데 리제가 단도로 자신의 팔을 긋고는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그러고는 잡고 있던 단도를 내가 있는 철창 안으로 던져 넣었다.
‘탕파를 달라니까 왜 저걸 주고 있어?’
나는 이 상황이 전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그저 멍하니 그 꼴을 보고만 있었다.
‘혹시 내가 지금도 잠들어 있는 상탠가? 이게 자각몽인가?’
오히려 그게 더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선량하고 정의로운 리제 싱클레어가 이렇게 대놓고 내게 누명을 씌우려 한다는 건 <집·사절>의 이야기 속인 이 세상이 뒤집히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내 헛된 바람과는 달리 리제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피해자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요, 에디트! 왜 이러는 거예요!”
“아, 아니, 저기…….”
내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더듬대고 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클리프와 킬리언, 그리고 기사 몇이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야, 리제!”
클리프는 남주인공답게 재빨리 리제를 감싸며 물었다.
그러다가 칼에 잘려 나간 옷가지와 옅게 베여 피가 비치는 리제의 팔뚝을 발견했다.
나는 그 순간 클리프의 눈에서 불꽃이 튀기는 줄 알았다.
“에, 에디트가 갑자기 저를 찌르려고 했어요. 저는, 그냥 탕파를 넣어주려고 했을 뿐인데…….”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리제는 크게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 엄청난 연기력에 나는 거의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난…… 난 아니에요. 내가 안 그랬어요…….”
이따위 틀에 박힌 소리나 하고 있고 말이다.
그때,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킬리언이 감옥의 열쇠를 갖고 있는 기사에게 열쇠를 빼앗아 내가 갇혀 있는 감옥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킬리언인데, 그가 내게 실망할까 봐, 내게 품고 있던 작은 호의가 사그라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아까 죽는 편이 나았을 텐데…….
감옥 안으로 들어온 킬리언은 내 쪽은 본 척도 하지 않고 바닥에 나동그라진 단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걸 앞뒤로 살피더니 감옥을 지키던 기사들에게 한 번씩 만져보게 한 후 클리프에게 건넸다.
클리프는 단검을 받아들고 나를 보며 이를 갈았다.
‘지금 그걸로 날 찌르고 싶어 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겠네.’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하니 그 꼴만 보고 있는데 킬리언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