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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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에디트에게 빠져 버린 거야. 그런 주제에, 나는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고 믿고 싶었던 거고.’

어리석고 유치하고 오만했다.

‘그때 에디트와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봤다면 좀 나았을까…… 그동안 에디트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준 것 같아. 이렇게 착해빠진 여자인데…….’

킬리언은 자신을 해하려 했던 여자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는 에디트를 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 여자 혼자 놔두면 분명히 똑똑한 척하면서 남들한테 다 퍼줄 거야. 안 되겠어, 내가 지켜줘야지.’

도도한 척 턱을 치켜들며 제 할 말을 따박따박 다 했지만, 결국엔 그를 너그럽게 품어준 여자였으니까.

“오늘의 리제는 정말 아름답네요. 좀 황당할 만큼이요.”

“당신이 더 예쁩니다.”

박수를 치며 소곤대는 에디트의 귓가로 얼굴을 내린 킬리언은 그녀에게 대답하는 척하다가 그 귀여운 귓바퀴에 입 맞추고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귀는 에디트가 유독 약한 곳이었다.

“읏! 킬리언!”

몸을 움찔하는 에디트만 봐도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오늘 결혼식은 언제까지 한답니까?”

“모르긴 몰라도 피로연은 자정까지 갈 거예요.”

“……제길.”

낮게 욕설을 짓씹는 킬리언을 보며 에디트가 피식 웃었다.

“신부는 얼마나 죽을 맛인지 알기나 해요?”

“당장 당신을 벗기지 못하는 나만 할까.”

음탕한 밀어를 속삭이는 킬리언의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리던 에디트는 킬리언을 장난스럽게 흘겨보며 그의 팔뚝을 찰싹 때렸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킬리언의 귓가에 속삭였다.

“점심 만찬 뒤에는 한 시간 정도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거예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당신 방? 아니면, 내 방?”

“……아니면, 아무도 오지 않는 3층의 발코니?”

“하아…… 진짜, 날 고문하려고 작정했군.”

“할아버지 장례식을 떠올려요, 킬리언. 앗! 박수 칠 차례예요.”

킬리언과 에디트는 다시 백작 부부다운 품위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남들과 함께 박수를 쳤지만, 그들의 속내는 이제 갓 사랑에 빠진 혈기 왕성한 신혼부부일 뿐이었다.

* * *

킬리언이 라이젠 백작 작위를 얻은 것은 내가 요양하며 누워 있는 사이에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그때는 킬리언이 당장이라도 라이젠에 내려갈 기세였기에 루드윅 공작도 서둘러 황실에 보고를 올렸고, 서류상 그때부터 킬리언은 라이젠 백작이었다.

클리프와 리제의 결혼 때문에 영지행이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준비를 게을리하지는 않았기에 클리프와 리제의 결혼식이 끝난 얼마 뒤 우리는 곧바로 라이젠으로 향할 수 있었다.

“몸조심하거라.”

“어머니, 아버지야말로 몸 건강히 지내십시오. 도착하면 곧바로 편지 올리겠습니다.”

루드윅 저택을 떠나던 날, 루드윅 공작 부인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루드윅 공작 역시 아쉽고 섭섭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클리프가 이미 후계자로 정해졌으니, 결혼까지 한 차남이 다른 작위를 받고 영지로 떠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다.

“질투 나게도 네가 나보다 한 발짝씩 앞서는구나.”

클리프도 아쉬운 얼굴로 킬리언과 작별의 악수를 나누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것도 내가 에디트를 얻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

“네가 이런 팔불출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킬리언은 아무 데서나 내 자랑을 하고 다녀서 사람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