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께서 도련님을 사랑하시는 것 같았고, 최근에 두 분의 사이도 좋아져서 기뻤는데…… 오늘 리제 아가씨와 킬리언 도련님 두 분만 외출하시는 걸 보게 돼서요…….”“아아…….”
“왜…… 두 분만 보내주신 건가요?”
나는 나와 킬리언 사이가 좋아진 걸 안나가 기뻐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큰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 리제와 킬리언이 둘만 나가는 걸 보니 안나는 또 불안해졌던 모양이다.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나…….”
“하지만 아가씨는 킬리언 도련님의 아내이시고, 아무리 남매처럼 지냈다고는 해도 리제 아가씨는 아내 있는 남자를…… 아니, 아닙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해주십시오.”
안나가 보기에도 그랬구나, 싶어서 나는 조금 위안을 받았다.
“킬리언은…… 무책임한 짓을 벌일 사람이 아니야. 그 사람이 리제를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와 혼인 관계를 지속하는 동안은 적어도 리제와 스캔들을 일으키지는 않을 거야.”
“킬리언 도련님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아가씨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요.”
그럴 만도 했다.
안나가 보기에 나는 얼마나 이상한 주인일까.
“아무래도 네가 보기에 나는 답답하기도 할 테고, 이상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결국은 다…… 살려고 이러는 거야.”
나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나를 보는 안나의 시선이 복잡해 보였다.
“킬리언 도련님을 사랑하시나요?”
“……응. 사랑해.”
킬리언에게는 고백할 수 없는 말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남자.
하지만 싸늘한 말을 뱉으면서도 은근히 나를 배려해 주고 보호해 주던 남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정염을 일깨워 주었으며 정적의 딸인 나를 ‘내 아내’라고 불러주던 남자.
아마 나 아닌 사람이 에디트에 빙의했더라도 원작의 에디트처럼 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리제 아가씨께 양보하십니까?”
“양보하는 게 아니야. 양보라는 건, 저쪽에서도 탐냈을 경우에 쓰는 말이잖아.”
“네……?”
“리제는 킬리언을 원하는 게 아니야. 그랬다면 나와 킬리언의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이미 그에게 매달렸겠지. 킬리언 앞에서 눈물 한 방울만 보였어도 킬리언은 공작 각하든 누구든 다 물리치고 리제를 얻으려 했을걸.”
하지만 리제는 킬리언과 나의 결혼을 축복해 주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남주는 킬리언이 아닌 클리프였으니까.
“클리프…… 도련님이겠군요.”
내 생각을 읽었는지 안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곧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왜 요즘 리제 아가씨께서 킬리언 도련님을…….”
“응?”
“아, 아닙니다!”
“아냐, 화내지 않을 테니까 말해봐.”
긴장이 풀어진 안나는 지금 제 입을 원망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안나는 주저하다가 웅얼거렸다.
“요즘 이상하게 리제 아가씨께서 킬리언 도련님께 잘해주시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리제야 원래 그랬잖아.”
“그, 그렇긴 한데, 요즘 특히나 킬리언 도련님께 자주 찾아가시거든요. 물론 도련님께서 부정한 행동을 하실 리는 없습니다만!”
안나의 얼굴에 낭패의 기색이 어렸다. 아마 이런 말을 입 밖에 낸 것 자체를 실수라고 여기고 있겠지.
어쩌면 그동안 내가 엑스트라들에게 들인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