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 여란의 엔딩은 요절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산아 여란이다.
나는 그 사실을 다시금 곱씹었다.
'뭐 이딴•••
정말로 욕이 나왔다.
이제가 혼인 연회였기에 나는 이 제 오늘부터 황궁에서 머문다. 그리고 나는 오늘이 빙의 2일 자 다. 즉, 어제 빙의했다는 말이다.
눈을 떴을 때 온 주변이 화려해 깜짝 놀랐었고, 그 티를 냈다가 아 버지인 기윤 여란에게 눈으로 살해 협박을 받았다.
그 서늘한 시선을 당시에는 알아채 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내가 황궁에서 쫓겨 돌아온다면 나 를 산산조각 내 돼지 밥으로 주겠다 는 다짐 정도였을까.
그 뒤에 끌려간 곳이 연회장이었 다.
나에게는 빙의 후의 당황스러움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
연회장 한가운데에 꿇어 앉혀져 황 제와 그녀의 부군들을 본 순간 머릿 속으로 산아의 기억들이 떠올랐고, 머릿속에 벼락같이 내가 읽었던 책 이 떠오른 것이다.
누가 나를 이곳에 집어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빠른 일 처리 가 아닐 수 없다.
하여튼 지금 나의 목표는 하나였
다.
최대한 황제와 후궁들의 눈에 띄지
o十느 1죠 1-八거•
•하0
가능할까?
나는 곧바로 내 목표를 부정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어제의 일로 황제는 내게 측은지심 을 갖게 되었고, 후궁들은 나를 주 시하기 시작했다.
황제는 이린 에를 돌봐야 한다며 간간이 신경을 쓸 거고, 그것에 남 주들은 질투로 눈이 뒤집어지겠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금세 결론을 내렸다.
'완벽한 아이가 되자.'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성취는 중상에, 말썽 안 부리는.
애정 결핍인 아이들에게 종종 나타 나는 증상이긴 했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든 착 한 아이가 되는 것.
하지만 그 아이들이 모르는 것은, 손이 많이 안 가는 아이일수록 눈길 도 덜 간다는 것이었다.
황제도 처음엔 좀 쟁기겠지만 스스 로 어린이인 나를 보면 금세 마음을 놓을 것이다.
그 뒤로는 내가 삼 일 동안 방에 처박혀 뒹굴거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지.
어제 황제의 눈에 들지만 않았다면 내 마음대로 늘어져라 게으름을 피 우며 한량으로 살았겠지만, 이미 시 선을 받아 비렸으니 어쩔 수 없다. 만약 내가 그런다면 황제는 당장에 선생을 보내고 하루에 한 번씩 나의 성취도를 확인할 것이다.
황실의 도덕 교육은 교육이라기보 단 세뇌라는 말이 더 맞을 만큼 철 저했고, 황제는 정말 안타깝게도 우 등생이었다.
그녀는 어리고 약한 것들은 잘 보 살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그 것을 실천했다.
신하들에게 폭군이라 불렸지만 그 것은 어디까지나 가자 없는 처벌 후궁들은 역대 황제들이 그렇듯 많 았으나, 여전히 그중에 태반은 정치 적인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나였지.
하하. 과거형. 망할 동정심.
•••아가씨. 제 말 듣고 계세요?
아가씨!” 쨍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나는 그제야 눈살을 찌푸리며 옆을 돌아보았다.
내 시선을 받은 시비가 씩씩대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가는 귀가 먹으셨어요? 제가 말하 고 있잖아요!” 우선은 우등생의 생활을 할 작정이 지만, 나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
괜히 소란을 부려 그 누구의 눈에 도 띄고 싶지 않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한국의 이웃사촌처럼.
조용히, 또 안은하게.
그게 내 목표였다.
그러니까 저 시비도 조용히, 안온 하게 처리해아지•••
그녀를 어떻게 처리할까 가만히 생 각하고 있자 다시 시비가 내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아가씨? 뭐야. 미진 건가?”
“그건 너고.” 나는 심드렁히 말을 툭 내뱉었다. 모시는 아가씨에게 이렇게나 하대 하는 시비라니. 사지가 잘려도 할 말이 없다.
산야의 기본 설정이긴 했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가없은 어린아이.
어릴 적부터 하도 눈지를 보고 자 라 영악하고, 응당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저 시비는 사가, 그러니까 여란 가 에서 따라온 아이였다.
그러니 당연히 내게 진절할 리 없 었다.
여란 가에서의 산야의 취급은 바닥 이었다.
그건 산야가 단순히 사생아라서 그 런 것만은 아니었다.
사생아라도 가문의 피를 이었다면 응당 가져야 하는 이능.
그것이 산아에게는 없었기 때문이 다.
그 덕에 가주는 아이를 방지했고, 웃전의 굄을 받지 못하는 상전을 아 랫것들이 챙길 리 없었다.
나이는 어리겠다, 보호도 없겠다. 괴롭혀도 별 탈 없는 목표물을 발견 한 사용인들은 날이면 날마다 산아 를 괴롭혀 댔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시비도 그중 하나였고, 그녀는 작중에서 산아가 후궁이 되자마자 모질게 매질당하고 쫓겨난다.
그걸 귀신같이 알아챈 남주들은 산 아가 이런 나쁜 짓을 했다고 슬쩍 황제에게 찔렀고, 산아가 진실을 요 란하게도 밝히며 황제의 총애를 얻 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네가 내 평온한 인생의 종 지는 소리라는 의미구나.
거참, 무슨 인생에 종 지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담.
나는 시끄러운 닭처럼 꽥꽥대는 시 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말을 무시하니 뭐니 떠들던 시 비가 내 눈빛에 움찔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이전까지의 산아는 얌전히 몸을 사 렸으니까.
혼인식 날 빙의한 것은 이것 하나 좋았다.
여란 가에서 나는 산아처럼 얌전히 는 못 있었을 것 같다.
“너, 이름이 뭐야?”
“아, 알아서 뭐 하시게요?” 시비는 내 눈빛에 잠시라도 얼어붙 있던 것이 짜증 나는 듯 빽 소리겠 다.
그녀의 반항적인 말에 나는 머리를 두어 번 긁었다.
“그러게. 알 필요는 없네. 그럼 그 냥 나가.”
“아가씨!”
“아, 이 방에서가 아니라 이 궁에 서.”
덧붙인 내 말에 화를 내려던 시비 의 얼굴이 더 벌게졌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귀를 후볐 다.
아까부터 빽빽 소리치는 목소리 때 문에 귀가 쟁쟁 울렸다.
“못 나가요! 아가씨가 무슨 권리로 날 내쫓아요!” 그 말에 나는 흥미롭다는 얼굴을 했다.
얘는 머릿속에 뭐가 든 걸까?
아니면 뒷배라도 있는 건가?
“네가 몰라서 그런 것 같은데, 난 황제 폐하의 후궁이거든.” 그래도 난 참 친절한 주인이었다.
나는 차근차근 설명한 뒤 이제 됐 지? 하는 얼굴을 했다.
내 말에 시비는 잠시 입을 다물었 지만, 금세 또 나불나불 떠들었다. “저, 전 주인님이 보내신 시비예
“그래. 그 말은 너를 첩자로 신고 해도 된다는 말이야?”
“예, 예?”
시비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人하게 탁자를 쓸며 한숨을 쉬었다.
후궁들이 황궁에 들어와 황제와 사 랑에 빠지는 데에는 한 달이면 충분 했다.
하여 후궁들에게는 혹 가문과 내통 하는지에 대한 감시가 필요 없었지 만,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후궁 에게는 달랐다.
후궁의 사가에서 따라올 수 있는 인원 또한 이린 시비 서넛 정도로 제한되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 후궁의 처소에는 황제의 궁에 있던 궁녀들로 재워진다.
대외적으로는 낯선 황궁에 들어온 후궁을 배려하느라 가장 훌륭한 궁 너를 배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궁녀들이 감시의 목적이라는 것 을 모르는 서라국의 귀족은 없을 것 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내 처소도 마 찬가지일 것이 분명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
황제는 그렇기에 다정하면서도 냉 혹했다.
그렇기에 방금 저 시비가 한 말도 얼마든지 반역의 의미로 들릴 수 있 었다.
물론 확대 해석이지만, 황궁에서 확대 해석되지 않는 일이 무엇이 있 겠는가.
기윤 여란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지만 않았다면 반역죄로 엮어 비 렸을 텐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태연히 말을 이었다.
“황가에 충성을 바지는 것이 마땅 한데, 너는 지금 대놓고 황가의 일 원인 나를 두고 여란 가의 편을 들 겠다고 말하고 있잖니.” “그건, 그런 의미가 “그럼?”
내 말간 물음에 시비는 잔뜩 붉어 진 얼굴로 입만 뻐끔거렸다. 할 말 이 없을 것이다.
그 아이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 이 내 시선을 문으로 돌렸다.
이 에를 웬만하면 빨리 내쫓고 싶 었다.
지금쯤 올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 모를 이 시비가 초를 치면 초를 졌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내가 문을 가만히 응시한 순간, 밖 에 서 있던 궁녀의 목소리가 들렸
다.
“마마. 설비 마마께서 드셨사옵니
다.”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이 벌 걱 열렸다.
열린 문으로 머리를 올리고 붉은빛 이 도는 비단옷을 입은 남자가 성큼 성큼 걸어 들어왔다.
“처음 뵙습니다. 초비 마마. 조윤이 라 합니다.” 초비.
그건 황제가 내게 내린 호칭이었
다.
서라국에는 후궁들을 위한 관직이 딱히 없다.
왕의 첩실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비 즈니스 파트너에 가까운 귀비만이 있을 뿐, 후궁들에게 내려지는 것은 호칭뿐이 었다.
그중에서도 내게 내려진 이름은 초
(草)였다.
들풀처럼 조용히 살라는 의미가 아 주 바람직했다.
꽃이고 별이고 다 필요 없어. 풀이 최고다.
이름은 입 안에서 굴릴수록 마음에 들었지만, 이 방에 있는 사람 중에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내 방에 있는 시비를 보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오기 전에 내쫓고 싶었지만 이미 왔으니 어쩔 수 없지.
나는 시큼한 것이라도 먹은 듯한 미간을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에도 남자의 기가 너무 커 한 참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남자는 꽤나 새침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고압적인 얼굴이 누가 봐도 내게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원작에서도 이미 나왔던 내용이었 다.
다만 이렇게 괴롭히는 장면은 없었 고, 첫날부터 후궁들의 텃세를 핑계 삼아 산아가 울며 황제에게 달려간 것으로 나왔지만 말이다.
다만 문제라면, 그렇게 울며 황제 에게 달려가는 산야의 뒤를 따른 것 이 이 남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산아가 자신을 울렸다고 고자질한 후궁은 내 눈앞에 서 있는 남자와 모든 것이 달랐다.
무엇보다 그 후궁의 이름은 가람이 었지 조윤이 아니었으니까.
조윤은, 음. 누구지.
기억나지 않는 이름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자 조윤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그 얼굴에 정신을 자린 나는 의자 에서 내려와 예를 차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산야입니다. 성 이 없어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점을 용서하세요.” 내 인사에도 조윤은 통 얼굴을 피 지 않았다.
내가 무일 하든 고까울 것이 분명 하기에 나는 굳이 그것에 얼굴을 찌 푸리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아무리 원작에 제대로 등장도 안 한 엑스트라라고 해도 지 금의 나보다는 강했으니 개길 수도 없었다.
그런데 정말 누군지 모르겠네.
내가 다시금 곰곰이 머릿속을 뒤지 고 있을 때, 조윤이 툭 입을 열었 다.
“폐하께 첫날부터 눈에 드셨더군
요. 좋으시겠습니다?”
오. 그 발언은 좀 놀라웠다.
고귀하신 후궁 마마답게 적당히 돌 려 말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돌직 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