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기 후궁님은 시끄럽게 살아야
햇살 좋던 어느 날, 화선궁. “저기, 초비 마마 있잖아.” 평화롭게 수를 놓고 있던 방 안이 그 한마디에 반짝 불이 켜진 것 같 았다.
갑작스레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 탓에 궁녀 전유가 머쓱하게 웃었다.
“별말은 아닌데•••••• 우리 마마,八 금 이상하시지 않아?”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희사였다.
방실방실 웃고 다니던 귀여운 얼굴 이 스산해져 있었다.
“희사, 바늘 좀 내려놓고••• “뭐라고, 전유?”
“아니, 나쁜 의미가 아니야. 이것 아!”
전유의 억울한 외침에도 희사는 여 전히 바늘을 들고 있었다. 뾰족한 끝이 번쩍 빛났다.
“우리 마마, 이제 연치가 여덟 살 이시잖아?”
“그렇지.”
“그런데 아무리 어른스러우시다 해 도 그렇지, 통 떼 부리시는 모습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황궁의 궁녀들은 모두 어릴 적부터 황궁에 들어와 산 탓에 진동생들을 돌보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나이 가 찬 뒤 막 들어온 에기 나인들을 돌봐야 했던 경험들은 모두 한둘씩 가지고 있었다.
그 덕에 그들은 산아 또래의 이린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 었다.
궁녀들은 슬그머니 바늘과 천 따위 를 내려놓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네••
“마마께서는 여란 가에서 자라셔서 그런 것 아니야? 권세 높은 가문일 수록 예절 교육에 철저하잖아."
“기윤 여란 그 금수가 우리 마마를 어찌 대했는지 몰라 그래? 마마께서 는 예절 교육을 받으신 게 아니라, 주눅 들어 사셨던 거지!” 한 궁녀의 외침에 여론이 술렁였
다.
“우리 마마. 이제는 그러지 않으셔 도 되는데•••
“사소한 것 하나 우리에게 말씀하 시는 것이 없잖아. 더 일찍 알아챘 어야 했어.”
“이제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이
아?”
시무룩해 있던 궁녀들이 점자 기이 한 투지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황실의 모든 상전께 굄을 받는 마 마께서 뉘 눈치를 보다니 말도 안
되지.”
“그럼.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신데 못 가지셔야 되겠니?”
“지금껏 그런 것들이 분명 있으셨
을 테야. 말씀을 못 하셨을 뿐이지.”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바늘을 들고 있던 희사 가 탁 소리 나게 바늘을 내려놓았 다. 그러자 궁녀들의 시선이 희사에 게로 쏠렸다.
“마마께서 떼를 쓰시게 하자!” 희사는 위풍당E갂하게 외졌다.
요상한 결론이었다.
“귀가 간지럽네•••
나는 괜히 귓속이 간질간질해 얼굴 찌푸렸다.
이 세계에도 귀이개는 있겠지. 궁 녀들한테 파 달라고 하면•••••• 좀 그 러려나.
해 달라고 하면 거절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좀 그렇다.
나는 내가 받은 선물들 중 귀이개 가 있나 싶어 방 한편에 쌓여 있는 선물들로 다가가 가장 위의 상자를 집이들었다.
어차피 열어야 할 것, 귀이개도 찾 을 겸 겸사겸사 열어 보면 좋을 듯 싶었다.
이건 너무 커서 귀이개는 없을 것
같지만•••
그리고 역시나, 시험 삼아 열어 본 상자에 담긴 것은 호박으로 만든 노 리개였다.
병아리색 실로 예쁘게 묶인 나비매 듭과 꼭 다식처럼 생긴 주황색 호박
이 아주 예뻤다.
무슨 호박을 이런 식으로 깎았담.
오래전에 과학책에서나 나오던 걸 실제로 보니 신기하다.
“고운. 이것 봐. 반짝거린다.” 투명한 보석인 덕에 불빛 아래 비 춰 보니 어느 정도 반대편이 보였 다.
그-正그 0 己0 데려다 이리저리 놀고 있는 데, 문밖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마마. 희사입니다.”
희사가 웬일로?
바깥을 보니 어느새 뉘엿뉘엿 노을 이 지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구나.
들어오거라.” 곧이어 문이 열리고 희사가 음식들 을 들고 들어왔다.
상에 식사를 차리면서도 나를 흘끗 흘끗 보던 희사가 2' 1-0 재게 놀려 잽싸게 끝내고는 내게로 다가왔다.
“어머, 마노 노리개네요. 마음에 서요?”
호박이 아니라 마노였구나. 나는 보석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러신가요?” 그런데 희사가 기묘하게 집요했다.
눈을 반짝 빛내더니 내게 재자 물었
다.
“그래. 밝은색이 마음에 드는구나.” “밝은색•••••• 참 아름답지요.” 내게 대답하는 희사는 누가 보아도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미묘하게 은 은한 미소를 지은 표정이 영 평소와 다르다.
그 모습이 나는 조금 의심스러웠
다.
너 뭐 사주라도 받았니?
이 선물을 준 사람이 꼭 내 칭찬 열 마디를 받아 오라고 했다든가, 그런••
•••매듭이 정교하구나. 마노도 세공이 아주 잘 되어 있고.” 나는 칭찬을 아주 간결하게 하는 편이다. 맛있다. 예쁘다. 좋다. 기껏 해 봤자 부사나 하나둘쯤 더 붙는
그래도 희사가 혼나게 둘 수는 없 으니 머리를 짜냈다.
두 번 만에 동났지만.
어영부영 입을 다물었지만 희사는 여전히 기대감에 찬 눈빛이었다. 도 리어 아까보다 더욱 강해졌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더 없다. 이 정도로 만족하라고
내가 더 반응이 없자 희사가 조금 시무룩해졌다.
“더 갖고 싶진 않으세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질린 눈 으로 산더미 같은 선물상자를 바라 보았다.
'저 안에 몇 개의 노리개가 더 들 어있을까••• 정말이지 이만하면 됐다.
아니면 혹시 가지고 싶어서 더 가 지라고 한 건가. 나한테 여러 개가 있으면 하나쯤 줄 수도 있으니까.
그 생각에 미치자 나는 희사에게 노리개를 내밀었다.
이거 하나 주는 게 뭐 어렵다고 그렇게 눈치를 봐.
하지만 희사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정신 좀 봐. 음식이 다 식었겠 어요.”
“괜찮다.”
한두 시간 죽치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식으면 얼마나 식있으려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상 앞에 앉
았다. 그리고 역시나 음식은 그다지 식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수저를 뜨려는데, 또다시 닿는 시선이 따끔따끔했다.
고개를 들자 내 시중을 드는 궁녀 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썹이 모두 축 처져 있다.
시무룩해 보이기도 했고, 슬퍼 보 이기도 한 얼굴이다.
밥 먹는데 왜 저래.
조금 얹힐 것 같았지만, 나는 꿋꿋 하게 식사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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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비 마마.” “왜 그러느냐.” “마마매”
심심하니?
읽고 있던 책을 덮고 희사를 물끄
러미 바라보자 희사가 입술을 삐쭉 였다.
다른 궁녀들이라도 제정신을 자리 고 있기를 바랐지만, 그들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하필이면 서연이 지금 자리를 비울 게 뭐람.
“다름이 아니오라•••••• 소인이 마마 께 아주 조금. 정말 조오금, 청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더 불렀다간 내가 화를 낼 것 같 은지 희사가 본론을 꺼냈다.
대강 예상했던 것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노 노리개 주라?”
“마마께서는 어찌 떼 한 번 쓰질 않으십니까?”
02
비교적 짧게 말을 끝낸 나와 속사 포로 말을 쏟아 낸 희사가 눈을 동 그랗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나?” “마노 노리개라니요?” 두 번째 물음에도 잠시 시간이 걸 렸다. 정확히 삼 초가 지난 뒤 희사 가 펄쩍 뛰었다.
“마마! 제가 감히 마마 것을 탐내 다니요. 이씨 그런 불경한 짓을!”
“너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릴 하는구나. 갑자기 웬 떼?” 소리 높여 항변하던 희사가 침착한 내 말에 딱 멈췄다.
그러더니 八르 그 1- 1-0 피하고, 입 을 댓 발 내민 채 중얼거린다.
“생각해 보면 그러시잖아요. 이것 이 좋다, 하고 말씀하시는 걸 뵌 적 이 없고, 무엇이 갖고 싶다 하시지 도 않으시고•••
아. 이제껏 다들 시무룩해 있던 이 유가 이거였나. 다른 궁녀들도 고개 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마께서는 걸음걸음마다 비단을 깔고 보화들로 황궁을 가득 채울 수 도 있으신 분입니다. 천하를 발아래 두신 분이 어찌 그리도 검소하시답
니까?”
“천하를 발아래 두신 분은 폐하시
지. 나는 그저 한낱 백성 아니냐.”
너 그거 아주 위험한 말이다, 회 사. 난 반역죄로 잡혀가고 싶지 않 았다.
“하오나 마마••• 여전히 펴질 기미 없는 얼굴에 결 국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이해는 하지만, 정말 가지고 싶은 게 없는 걸 어떡 하라고? “이미 모든 것이 충분하지 않느
“고작 이것이요?”
희사는 당연하다는 듯 물었지만, 내 입장에선 다른 의미로 당연한 것 이었다.
난 월셋집 살던 한국인이었으니까.
“이미 충분해서 더 요구할 필요를 못 느끼겠구나. 나는 이만으로 괜찮 으니 더는 마음 쓰지 말거라.” 마지막 말이 괜히 안타깝게 들리려 나. 어쩌다 보니 뉘앙스가 약간 에 매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고, 시간은 돌릴 수 없다.나는 더욱 울망해진 궁녀들의 눈동 자를 보며 조금 불안했지만, 에씨 넘겼다. 기껏해야 이보다 좀 더 극성맞아질 정도겠지.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