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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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고, 그런 이유로 날지는
'
가제요
내가 그렇게 핀잔을 주자 엄마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녀는 그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 지 인지한 듯했다.
엄마는 해명하려 무이라 말을 하려 다 그만두었다.
그렇지만 내게 안 좋은 모습을 보 여 주었다는 것으로 조금 의기소침 해했고, 모든 생명은 소중하며 나 또 한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엄마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지만, 나는 사실 그게 조금 좋았다.
예화의 애정을 독자지했다는 걸, 그 리고 그게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 라는 걸 확인받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내심 좋으면서도, 시간이 조금 지나자 부끄러워졌다.
간혹 아이들이 둘째가 태어나면 그 아이에게 부모의 관심이 쏠리는 걸 질투하는 경우가 있다는 건 들어 봤
다.
문제라면 그 아들이랑 나는 나이의 십의 자리 숫자부터 다르다는 거지. '언제 적 에정결핍인지, 정말.' 화룡궁을 나오며 나는 작게 혀를 찼다.
이게 다 날 너무 오나오나해서 그
래.
되바라진 아이답게 어른들에게 그 탓을 돌린 나는 가마에 올라타기 전 잠시 대문을 흘긋거렸다.
기윤을 상대하느라 진이 다 빠졌고, 워낙 저녁 시간이었던 터라 나는 꽤 나 오랜 시간을 화룡궁에 머물렀다.
그 덕에 들어갈 때에는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있 었다.
그 에는 간 것 같긴 한데.
대문 너머에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 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남아 있을 까 조금 찜찜했다.
개는 보호자도 없나.
사신으로 따라올 정도면 본국에서 도 꽤 높은 신분일 텐데.
아니면 본국에서도 어수룩한 공주 마마 꼬셔 오라고 방치했을지도 모 르겠다.
'뭐가 됐든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
지.'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지운 나는 가마에 올라탔다. 가마가 잠시 흔들 거리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궁에 돌아가기 전에 산화정이나 들 렀다 갈까.
얼마 전에 희사가 밤이 되면 반딧 불이가 그렇게 예쁘다고 한 게 생각 났다.
이대로 돌아가기도 좀 아쉽고. “산화정에 잠시 들르자꾸나.”
서라국이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만 큼, 산화정은 정원들 중 가장 큰 그 기였다.
내려오는 전설로는 초대 용이 제 반려였던 초대 황제에게 준 정원이 라 사시사철 언제-1- •八-0- 보 2' 이 다고 한다.
물론 그건 아닌 거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쁘네.' 이번에도 다른 궁인들은 모두 물린 채, 나는 고운만 데리고 한가롭게 산 책 중이었다.
산책은 나도 몰랐던 내 취미였다.
아무 생각 없이 한가롭게 예쁜 풍 경들을 보는 게 생각보다 좋았다.
물론 그것도 많이 걷지는 않지만.
잠시 걷던 나는 커다랗고 평평한 돌 위에 대충 걸터앉0갔다. “오늘 날씨 좋다. 그치, 고운?” 온몸을 다 덮는 옷을 입고 생활하 지만, 이곳의 여름은 견딜 만했다. 지구 온난화도 미세먼지도 없는 세 계. 하늘은 늘 파랬고, 여름엔 그늘 에 있으면 시원했다.
황혼이 물든 하늘과 살짝 선선한 바람, 풀벌레 소리와 코끝에 맴도는 여름 냄새.
내 인생이 언제 이렇게 다채로워졌
전생에서의 삶도 나쁘지 않았다. 나 름 지열하게 살았고, 목표도 있었고, 사람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나쁘지 않지만 좋지도 않은 삶.
그래도 그건 내 삶이었고 나는 그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사실 처음 이 몸에 들어왔 을 때에는 무섭고 불편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지.' 책으로 읽었다 한들 모두 초면인, 그것도 내게 적대적인 사람들.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생활 방식.
지나고 나서아 회고하지만, 그때의 나는 꽤나 메말라 있었다.
그래도 천천히, 아주 조용히.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나는 이 삶 에 스며들었다.
고난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참•••  '행복하네.' 어우, 오글거려.
순간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반박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생각하면 수치스러워할 생 각은 접고 조금 더 걸어 볼 생각이 었다.
“고운, 가자.
내 부름에 고운이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이 퍽 심각해 의아했다.
“왜 그래?”
“저기, 수풀 뒤에 누군가 있습니
다.” 아, 제발.
방금까지도 아주 평화로웠던 분위 기를 깨지 말아줘.
이제 조금 익숙해졌는지 놀람과 두 려움보다 짜증스러움이 앞섰다.
나는 고운에게 조용히 물었다.
“살수야?”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몸 집이 작고, 무엇보다•••  잠시 머뭇거린 고운이 말을 이었다. “울고 있습니다.”
“그러게. 네 말대로 살수는 아닌 듯 한데.”
어린 환관이나 생각시들이 선배들 의 텃세에 못 이겨 숨어 우는 경우 는 빈번했다. 하지만 그 장소가 산화정이라는 건 또 신선한데.
정원은 황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궁 인들이 멋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나는 아무 상관 없지만, 여름의 산 화정은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찾을 텐데.
“상전에게 들켰다간 크게 혼이 날 테니 말은 해 주어야겠구나.” 고운이 말한 수풀로 다가가자 울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言끅l 끅  앳된 목소리였다. 애써 소리를 참고
있지만 울음이 새어 나갔다.
애 주제에 뭐가 그리 슬퍼서 이렇 게 서럽게 울이.
위로라도 해 줄 요량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간 나는 동그란 금색 머리통 을 발견했다.
저 옷은 궁인들이 입는 옷이 아닌 데?
'아까 그 에잖아.' 어떻게 따라왔는지 화룡궁에서 날 애타게 바라보던 그 남자에.
“엄마, 내는•••••• 끅. 내는 망했다. 단단히 미운털이 박히가, 이제 만나 주시지도 않을 기라. 내 우짜노
이이구야.
나는 하마터면 육성으로 감단할 뻔 했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들어 보는 사투리였다.
사투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 지만, 영국식 영어를 쓸 것 같은 애 가 저런 말을 쓰는 게 참•••  내가 미묘한 얼굴로 굳어 있는 것 을 알아차리지 못한 아이는 입이 트 였는지 계속 중얼거리며 울었다. “내는 왕자 자격도 읎다. 엄마, 내 우짜노•••
서라국은 나라가 큰 만큼 각 지방 별로 방언이 다르다고 했다.
황궁의 궁인들은 각 지역에서 왔으 니 말투가 다를 텐데도, 나는 지금껏 사투리를 들어 본 적은 없었다.
내게는 모든 말이 한국어로 들리고 모든 글이 한글로 들린다면, 사투리 는 일종의 외국어의 표현인 걸까. '중요한 게 이게 아니긴 하지만.' 방금 그러니까 분명히•••
“왕자?” “어, 엄마아빠아!” 아차, 실수.
조용히 듣고 있으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눈물 젖은 새파란 눈동자가 휘둥그 레져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묘하게 시선을 피했다.
숨 막히는 정적이 잠시 지나고, 잠 시 말랐나 싶던 아이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팡 터져 나왔다.
입을 달싹대던 나는 결국 한쪽 무  교 근 꿇고 앉아 소매로 아이의 눈물 을 꾹꾹 닦아 주었다.
'좀 미안하네.' 내가 상대 안 해 줬다고 여기 숨어 서 울고 있었던 건가.
아륜의 첫날에는 좀 똑똑해 보이더 니, 그냥 애기였다.
왕자 자격이니 어쩌니 한 게 무슨 의미인지 듣고 싶기는 하지만, 우선 달래는 게 우선인 것 같았다.
아가, 울지 마. 너 아무리 울어도 이모는 네 맘 못 받는다.
혹, 끅, 마마, 끅!”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들어 줄 터이니, 다 울고 말하시오.” 토닥토닥 아이를 달래자 아이의 울 음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눈물이 멈춘 채로 끅끅대는 모습  본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얘 보호자 어디 있어•••
아이를 달랜 뒤 꼭 사신들이 머무 는 환희전에 서신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한 나는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 다.
아이는 이제 완전히 눈물을 그친 채였다.
이름이 뭐랬더라. 유리?
“그래서, 내게 무슨 말이 그리 하고 싶었소?” 고저 없이, 아주 덤덤하게 물었다고 나는 자부한다.
그런데 그게 또 뭐가 문제였는지.


미치겠다. 또 울어.
“저, 저는 실바누스 왕국의 제1왕자 유리라고 합니다.” 이걸 달래아 하나, 다그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유리가 울면서도 꾸역꾸역 말을 이었다.
아까 왕자가 어쩌고 하더니 정말 왕자가 맞았구나.
자기소개.
그리고 그다음이 고백인가.
“저희 왕국이, 끅. 큰 위험에 처했
는데••
•••고백.
“제발 도와주세요•••  그 밑도 끝도 없는 구조 요청에 나 는 잠시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 아니었구나.
아니라니 다행이다. 정말로.
•••여러 의미로.
'내가 먼저 말 안 해서 다행이다.' 평소 과묵했던 나의 습관에 큰 찬
사를.
내가 먼저 말하지 않은 이 상황에 서도 나는 당장 도망가고 싶었다.
아. 말로 형용하기도 싫을 만큼 부 끄럽다.
김칫국 제대로 마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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