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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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성 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무릎을 굽혀 나와 시선을 맞췄다.
“강녕하셨습니까, 아가씨.”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익숙한 태도 에 나는 잠시 적응하지 못했다.
분명 낯익은 얼굴이 아니다.
나를 아가씨라고 부른다면 여란 가 의 사람인 듯한데.
기윤이 자신 대신 이 사람을 보낸 건가?
“주인마님께서 꼭 오고 싶어 하시 있는데, 부득이하게 소인이 왔습니 다.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지요.”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단번에 신뢰 하기는 역시 어려웠다.
아니, 애초에 저 인상이 믿기 어려 운 인상이다.
누가 봐도 '나 꿍꿍이 있어요' 하는 웃는 상이잖아.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남자가 서운하다는 얼굴을 했다.
“진정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마마의 본가에서 잡일을 하는 하 인, 지수가 아닙니까.” 더 수상해.
기윤이 황궁에 잡일을 하는 하인을 제 대역으로 보낸다고?
어떻게 대처해아 할지 알 수가 없 었다.
눈앞의 남자를 알지 못했고, 그가 암살자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떨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정말 불길하게도, 그가 히죽 웃었다.
“아, 그렇죠. 기억하지 못하시겠지 요." 이거 이 정도면 사전에 실려야 한
다.
실눈을 뜬 웃고 있는 사람은 불길 하다고!
'대비를 미리 해 두길 잘했지.' “자, 아가씨. 여기 집중하세요.” 그는 내게 한 발짝 다가오더니, 딱, 하고 내 눈앞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 소리와 함께 일순 정신이 몽롱 해졌다.
“진정 기억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여란 가에서 잡일을 하던 하인, 지수 입니다.” 생각이 많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안에 남자의 목소리가 활자로 변 해 새겨졌다.
지수, 여란 가에서 잡일을 하던, 지
맞아.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누구지?'
떠오르는 기억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을 때, 나는 깜짝 놀라 깨어났다.
그런 나를 보고 남자가 혀를 작게 찼다.
“정신이 금방 드시는군요. 힘이 부 족해서 약하게 했더니, 역시나인가.” 남자는 이제 속내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염병. 이능 못 쓴다며.
'쌌잖아!'
방금 내가 잠시 정신을 잃은 것은 누가 봐도 지금 저 사람의 소행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내가 혼 자가 아니라는 것.
나는 손 안에 작은 종을 보이지 않 도록 숨겼다.
노을을 찾아갔을 때, 나는 그에게 간단하고도 기본적인 것을 명했다. '하루 온종일 나를 호위하는 것.'
24시간 동안 나를 지켜보는 게 좀 힘들까 싶었지만, 알아서 로테이션 돌겠다 싶었고.
황족을 지기는 것. 그건 황족의 암 대인 그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일이 었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도 했다.
종을 울리면 내가 위험하다는工0 로 알라고 미리 말해 두었다.
내 목숨이 누구보다 귀했던 나는 곧바로 종을 고쳐 잡고 조지를 취하 려 했다.
하지만 하나의 의문이 내 발목을 잡았다.
•••이능이 세뇌인가?' 만약 살수라면 왜 저런 이능을 가 진 이를 보낸 거지?
'세뇌로 자살하라고 시길 수도 있잖
아.
어, 그러게.
나는 잠시 고민했다.
위험한 상황이기는 했다. 그런데 어 째 그리 위험한 느낌이 들질 않았다. '너무 촐싹대서 그런가.
겁먹은 척 물어보면 다 대답해 줄 것 같고, 그러네.
나는 결국 종을 울리지 않고 그에 게 물었다.
•••누가 보냈지?” 내 질문에 그가 피식 웃었다. 1- 그 한 태도였다.
“마마의 아버지께서 보내셨지요. 여 식이 저를 사랑하는지 고되하는 아 비지께서요.” 진짜인가? “아프지 않을 겁니다.”
“잠깐만!” 한 번에 죽어도 안 아픈 건 마찬가 지잖아!
또다시 내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기 려던 남자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날 죽일 것이나?”
“이린 공주께서 무서운 소리를 하 십니다.” 그가 과장되게 반응하더니 싱긋 눈 웃음을 지었다.
“그저 아주 작은 사실 하나를 마마 의 머릿속에 각인시켜드릴 뿐이랍니
다.”
“투신시기려고?”
•••귀한 집 아가씨께서 험악한 것들을 잘도 아시는군요.” 따져 묻는 목소리에 남자의 목소리 가 질린 듯 바뀌었다.
정말 죽이려는 건 아닌 모양인데.
“무서운 것이 아닌데 어찌 그리 떠 십니까. 아주 간단한 것이에요.”
“그러게, 아버지를 공경하고 사랑하 는 마음을 평소에 더 보여 주셨으면 이럴 일이 없지 않았겠습니까.” 아, 그러게. 기윤이 보낸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사실 한 가지를 더 알 게 되었다.
'나 의심받고 있구나.'
남자가 악당 같은 얼굴을 하며 한 발 더 다가왔다.
한 발 물러나려던 나는 그 뒤의 무 엇을 보고 비릿하게 웃었다.
글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마마, 여기- 으아악!” 남자가 손을 들었을 때, 그 뒤에 서 있던 누군가가 그 손을 잡아챘다.
그가 혼비백산해 소리를 지르는 모
스 曰근 0 1 1.느 1- •正- 근0 떼지 않고 지켜보았
다.
잡힌 손목에서 연녹색 기운이 일렁
이더니, 손목을 잡은 남자에게로 향 했다.
남자를 저지한 것은 긴 남색 머리 가락과 청안을 가진 남자였다.
기가 엄청나게 커서 한참을 올려다 보아야 했고, 마찬가지로 몸집도 겄 다.
종을 울리려던 찰나에 남자의 뒤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내가 그를 의심하지 않은 것은 그 머리를 틀어 올린 용 비녀 덕이었다.
용 비녀는 황족만 쓸 수 있었고, 후 궁 중에서도 하사받은 이들은 많지 않다.
, 예화의 사람이다.
“많이 놀랐느냐?”
잔잔한 중저음이 공간을 울렸다. 책 을 읽는 것처럼 묵직한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머리를 장식한 여의주를 바라보았다.
본래 여의주의 색은 검은색이다. 내 가 가지고 있는 두 개 모두 그랬다.
하지만 저 남자의 비녀에 달린 여 의주는 연녹색이었다.
아까 봤던 기운과 같은 색의.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그 목 소리에 깜짝 놀랐다.
맞아. 저놈 이능!
“입을 막아야 합니다!” 다급하게 외졌으나 남자는 아무렇 지 않은 낮으로 웃었다.
“괜찮다.” 잠시 난리를 피운 나는 조금 머쓱 해졌다.
지수라는 남자도 체격이 꽤 커 보 였는데, 남색 머리카락의 남자에게서 는 맥을 못 췄다.
당혹스러운 얼굴로 몸을 바둥거리 는 그를 본 나는 그제야 그에게 시 선을 돌렸다.
정말 괜찮은가 보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도와주서서 감사합니다. 큰 은혜를 입었군요.”
우선 남색 머리카락의 남자에게 인 사하자 그가 가볍게 눈인사로 답했 다.
흔쾌히 도와준 걸 보면 그렇게 나 쁜 사람은 아닌 듯싶은데.
어찌 됐든 황족이고.
“혹 시간이 남으신다면 조금만 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조심스레 묻자 그가 의외라는 듯 눈이 조금 커졌다.
하지만 기분 나빠하는 얼굴은 아니 었다.
“그러려무나.”
“감사합니다.” 빠르게 인사한 나는 남자의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수의 오금을 걷 어찼다.
픽 |
걷어차자마자 그가 무릎을 꿇었다. 생각보다 힘이 약한 모양이야. 암살 자는 이능 하나로만 됐나?
다시 앞으로 돌아온 나는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는 자마 먹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했던 다식이 들어 있었
다.
“이자의 입을 벌려 주세요.” “너, 월 하려는 0 의" “이제 닫아 주시면 됩니다.”
벌려진 입으로 다식 하나를 빠르게 던져 넣은 나는 입이 막힌 채 읍읍 대는 지수와 눈을 맞췄다.
“씹어 삼켜. 그렇지 않으면 코도 막 을 거야.” 그는 잠시 저항했으나, 내가 정말로
코를 막자 숨이 막히는지 다식을 씹 었다.
나는 그의 목울대가 몇 번 넘어가 고 나서아 손을 풀어 주었다. “뭐, 월 먹인 거야, 해” 나는 그가 말을 맺기 전에 손날로 목젖을 내리쳤다.
“존대해.
•••월 먹인 겁니까!” 시킨다고 진짜 하네.
“글쎄, 뭘까.
의미심장한 말에 지수의 얼굴이 자 자 질려 갔다.
한가롭게 고민하던 나는 툭 말을 뱉었다.
“내 물음부터 대답하면 말해 줄게.”
•••말하십시오.” “아버지가 보냈니?” 직구로 던진 말에 잠시 정적이 홀 렀다. 그는 눈을 도르록 굴리다 내게 물 었다.
•••대답 안 하면 죽일 겁니까?”
“공주 마마. 죽는다는 게 원지 알기 는 합니까?”
“일단 네 입이 명을 재촉한다는 건 알겠구나.”
“어찌 죽이시게요.”
“네가 방금 무일 먹었는지 기억은 못 하니?” 내 말에 여유를 가장하고 있던 그 의 가면이 깨졌다.
“바른대로 대답하렴. 살릴지 죽일지 는 그때 가서 생각할 테니.”
“예, 맞습니다! 마마의 부친께서 보 내셨습니다!” 오, 빠른 배신.
“무일?”
“제 이능은 세뇌입니다. 마마께 부 친을 누구보다 따르고 사랑하며 무 엇이든 해 드리는 것이 부친께 효도 하는 길이라 인식시기라고 하셨습니
다.”
아, 그렇지. 정말 귀신 같은 인간.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름 열 심히 연기했는데, 저번의 내 태도가 의심스러웠던 모양이다. “그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정말로요!”
지수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제법 필사적인 걸 보니 정말인 것 같기는 했다.
•이제 그만 보내 주시겠습니
까?”
나는 미묘한 얼굴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게 여란 가의 하인이었다고 세뇌 하려던 걸 보면 다른 곳에서 고용된
느正L- 1- 듯한데  몸도 엄청 사리고.
잘 속고, 순진하고, 몸이 약하다는 게 흠이기는 해도 세뇌라는 이능은 유용하다.
굽혀야 할 때 뻗대지 않는 유연함 도 나쁘지 않고.
그러니까 제법•••
'쓸 만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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