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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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다시금 시선이 쏠렸다. 나는 곧장 본론을 꺼내는 대신 걱 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전에, 혹시 그분의 유골이 모 두 온전히 보존되고 있나요?” 물론 나는 그 -n-己己0 고드 01 어떻게 쓰이는지 안다. 그래도 모르는 것
처럼 물었다.
“아티팩트가 부서졌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아티팩트요? 유골을 그리 부르나 요?”
의아하다는 내 반응에 뭔가 싸함  느꼈는지 공작의 얼굴에 낭패가 스졌다.
하지만 그는 곧장 대답했다.
“서 대륙에서는 유골에 마법을 담 아 아티팩트를 만듭니다. 그것이 있다면 마력이 없는 이들도 마법 을 쓸 수 있지요.”
“서 대륙이라 하심은, 실바누스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말씀이 신가요?”
“실바누스 내에서 모두 만들어지 지는 않습니다만, 그 유골은 실바 누스의 주 수출품인 것은 맞습니
다.”
“세상에••  나는 작게 단식했다.
“그래서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 군요."
“뭐라고 하셨기에••••••?” 조심스레 물어 오는 공작에게 나 는 측은한 얼굴을 했다.
“용께서 제게, 자신을 안식에 들 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들이 있다 고 하시더군요.”
11년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나
“제게 잠들 수 있게 도와 달라 하 시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 런•••••• 끔찍한 일이 있었다니.”
한숨을 내쉬자 공작이 눈을 그게 홉떴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분을 모욕하  1-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티팩트 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동안 아무렇지 않았는데•••
“자비로운 용께서 지금껏 참으신 거지요. 아마 대화를 하실 수도 없 으셨을 테니 말이에요.”
조곤조곤한 나의 말에 공작의 입이 딱 다물렸다.
이걸 믿다니, 내겐 좋은 일이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검은 머리와 서라국에서 왔다는 게 그렇게나 강력한가.
'어찌 보면 인간에 제일 가까운 색일 텐데.'
서라국에선 국민의 절반은 흑발일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용과 관련된 일에는 흰색이 더 찾0갔다.
여의주를 부수고 용을 만났을 때 에도 온통 흰 공간에 갔었고, 천룡 이 된 엄마의 머리색도 흰색이고,
복사꽃이 피고 나타난 아기씨의 눈 과 머리카락 색도 흰색이었지.
'약간 회색빛이 돌기도 했던 것 같긴 한데.' 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소매로 입을 가렸다.
“노여우실 만도 하지요. 한낱 인 간도 제 몸을 누군가 마음대로 사 용한다 하면 분노할 텐데, 지고하 신 용께서 그런 수모를 당하셨으
아직 공작이 덜 넘어왔다. 확실하 게 쐐기를 박을 생각이었다.
“서라국에도 용의 유해는 있습니 다.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여의주 가 그것이지요. 하지만 서라국에서 는 여의주를 나라의 국보로 삼고, 아주 소중히 다룹니다만•••  나는 안타깝다는 듯 말을 흐렸다. “어쩌면 서라국에 이능 고갈이 일 어나 제가 서 대륙에 온 것이 모 두 용의 안배일 수도 있겠군요.
“그,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습니 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공작은 금세 홀랑 넘어왔다.
나는 웃음을 삼기며 차분히 물있 다.
“우선, 그분의 유골이 어디에 있 나요? 이미 대륙 전제로 피진 것 은 자지하더라도, 남은 것이라도 수습해 드려야겠습니다.” “예. 그래야지요.” 지금껏 쓰고 있는 아티팩트를 앗 아 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감 사한지 공작이 연신 고개를 주억 거렸다.
“용의 등지는 저희 플린트 공작령 에 있습니다. 그 등지를 지기는 것 이 저희의 숙명이지요.” “그러셨군요•••
그런 분이 왜 유골을 가져다 파 셨을까, 하는 의도를 담아 작게 중 얼거리자 공작이 당황했다.
나는 빙긋 웃어 주었다.
“그렇다면 시일 내에 제가 방문할 수 있을까요?”
“예. 전하께서 편하신 시간을 말 씀해 주시면 모시겠습니다.
“고마워요. 이제라도 참회하셨으니 용께서도 용서해 주실 거예요.” 좋아.
해결 끝.
내심 긴장했던 나는 지나가던 시 종의 쟁반에서 잔 하나를 들었다. 투명한 유리잔 안에 담긴 호박색 액체가 예뻤다.
“제가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한 듯 싶군요. 두 분께서 열어 주신 파티 인데, 즐겨야 하지 않겠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파티장의 분위기가 풀어졌다.
나는 내게 맞장구치며 웃고 떠들 기 시작하는 그들의 얼굴을 가만 히 바라보았다.
아, 역시 피곤해.
어서 돌아가고 싶었다.
내 나라, 내 집으로.
발코니의 유리문이 닫혔다.
꼼꼼하게 커튼까지 친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실바누스의 귀족들은 언제 나를 냉 대했냐는 듯 봄날 꽃을 본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평생 들을 전하 소리 오늘 다 들 은 것 같아.'
붙임성 좋게 자신을 소개하는 말 들이 귓가에 쟁쟁했다.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얻어 보겠다는 눈들이 탐욕스러웠다.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그들을 상대 했고, 춤을 신정하는 영식들과 서너 곡 정도를 추었다.
언령으로 적당히 익혀 두기는 했지 만 익히 말했듯이 언령이 만능은 아 닌지라, 한 번도 춰 보지 않은 춤이 어색했다.
결국 발코니로 피신 오기는 했지 만, 적당히 상대해 줬으니 나라의 위신이 깎이지는 않겠지.
가만히 기대어 선선한 바람을 쐬 던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호위처럼 시선을 내리깔고 있던 고 운이 고개를 들었다.
연한 청회안이 심해처럼 잔잔했다.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미묘해 졌다.
공작은 용의 노여움을 샀다는 말이 꽤 무서운지, 내게 당장 내일 시간 이 되냐고 물었다.
나 또한 빨리 해결하는 것이 더 좋아 흔쾌히 허락했고, 내일 용의 등지에 방문한 뒤 공식적으로 실 바누스를 떠날 예정이었다.
혹시 용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실 바누스에는 방법을 찾았다고 공표 했으니, 그들의 앞에 다시 모습。
드러낼 리는 없겠지.
“오늘로 끝이겠구나.
그렇다면 굳이 약혼했다는 거짓 말을 이어 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끼려 하고 불편해했던 게 무색할 만큼 금세 지나간 시간이었 다.
고작 일주일 남짓한 시간. 나는 평소와 같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정 말 많이 휘둘렸다.
고운의 온갖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 고, 의심하고 설레했다.
너는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호수 처럼 고요한데, 나 혼자서만.
그게 정말 아무렇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아쉽지 않니?”
아무것도 내보이고 싶지 않아서 모 두 감춘 걸까. 충동적인 물음이었다. 하지만 철회 하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이나 네게 물었고, 너는 번번이 부인했다.
내가 과민한 것 같다는 의심은 계 속해서 했다.
구질구질한 짝사랑이라 치자.
이게 정말 마지막이다.
“내일로 우린 파혼하잖아? 비록 말 뿐인 혼약이었지만 말이야." 가법게 농담을 던진 것처럼 느긋하 게 웃었지만, 고운은 대답하지 않았
다.
고운이 한 발짝 다가왔다.
창틀로 새어 나오던 빛이 그의 일 굴을 비껴갔다.
음지에 선 고운의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전하의 배필이 될 수 있 이 영광이었습니다.”
고운의 낮은 목소리가 파티장의 불 빛과 선율이 새어 나오는 발코니에 잔잔히 깔렸다.
“청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운이 말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운이 내게 무언가를 부탁한 것이 내 생에 통틀어 처음이었다.
“저와는 한 곡도 추니 주지 않으셨지
요.”
고운은 서 대륙의 춤을 모른다는 이유로 내 첫 춤을 거절했다.
내심 아쉬웠지만 이해했다. “아직은 제가 전하의 혼약자이니,
그런데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언뜻 절박하게 들렸다.
여전히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 다.
어둠 속에서 고운이 내게 한 손을 내밀었다.
“저와 춤추시겠습니까?” 번드르르한 웃음도, 대단한 언변도 없는 몹시 투박한 청이었다.
나는 그 1- 근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 발짝 다가갔다.
아주 가까이 다가간 거리에서, 어 둠 속에서도 고운의 얼굴이 보였다. 어둠에 녹아들 것 같은 표정. 맑았 던 눈동자에 고여 있는 감정들이 선
명하다.
체념, 슬픔.
그리고 한 가닥 남아 있는 갈망.
나는 기묘한 환희에 휩싸여, 재고 따질 것 없이 입을 열었다.
그래. 착각이었을 리가 없지. “날 사랑하는구나.” 그렇지?
그 말에, 나는 추국장에 선 죄인 같은 얼굴을 마주했다.
얇은 입술이 바르르 떨리며 열렸다 가, 그대로 꾹 닫혔다.
명백히 무언가를 들킨 얼굴.
그것만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심장이 크게 뛰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도, 음악 소리도 모두 그 소리에 스러졌다.
“끝까지 숨길 생각이었니?”
차분하게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 끝 이 고양되있다.
이렇게 다 티가 나는 것을, 고운은 용케도 숨겨 왔다.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한다.
나는 너무 겁이 많아 네게 티 내 지 못했고, 우리가 처한 상황 또한 녹록지 않으니까.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시간에마저 이어 온 소중한 인연이다.
함부로 끊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후에 황제가 되어 여러 후궁들을  들일 거라 예상한 내 상황 또한 그 랬겠지.
네게 물었으니 대답을 들어야 하는 데, 기다리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우린 평단하지만은 않겠지.
우리는 어쩌면 이런 것만 닮아서  , 너도 나도 겁이 많으니.
그래도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만으로도, 그걸 모두 감수해도 될 것 같은데.
“나도 너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할 래?”
생각할 새도 없이 폭탄 같은 말이 툭, 던져졌다. 

17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