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은 아닐 것이 분명한 그들을 따라가자 점점 인적이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식사는 하시었소?”
八하게 걸으며 그들에게 말 을 걸었다.
잠시 대답이 없더니, 어이없다는 듯 혀 차는 소리가 났다.
“어지간히 곱게 자란 아씨이신 모 양인데, 이 정도면 백치 아닌지.” 어이구, 말조심하세요. 황족 능멸죄 로 혀라도 잘리면 어쩌려고.
“안타깝게도 내가 백치는 아니라 서. 하여간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 아니오.”
그 말이 제법 타당했는지 내 머리 위에서 우물쭈물 대답이 돌아왔다.
••••먹었소
“식사는 거르면 안 되지. 잘하셨 삼삼한 칭찬을 건넨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우리를 위협하는 사람은 둘이었다. 내 뒤에 있는 사람과 고운의 뒤에 있는 사람.
내 뒤에 있는 남자는 그래도 존대 도 하고, 나름 물렁한데 고운의 뒤 에 있는 남자는 아닌 것 같았다.
백치란 소리도 저쪽에서 했지. 그 쪽이 주도자인 것 같은데.
“해서,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오?”
“별다른 이유랄 게 있겠나? 네년 말 대로 먹고살려고 이러는 거지.”
느릿하게 물은 말에 제법 과격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죽거린 말에 고운이 움직였는지, '이놈이 왜 이래.' 하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퍽,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느긋하게 풀려져 있던 일 굴이 확 굳어졌다.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던 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사람이 많다. 물어볼 것도
고운과 내가 가까이 붙어 있었기에 나는 어렵지 않게 고운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1- 0 토닥이자 고운이 손을 맞잡 았다. 그 손이 너무 찼다.
많이 무섭나. 별 일 없을 텐데.
“혹시라도 이능을 쓸 생각이라면 얌전히 접는 게 좋을 거다.”
내가 고운을 달래는 사이 고운의 뒤에 있던 남자가 으름장을 놓0갔다. 나는 왜라고 물을까 하다가 알아서 말해 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 리고 내 예상대로 남자가 말을 이었 다.
“나는 진서 여란. 억울히 멸문한 여란 가의 차남이다.”
분위기 잡고 한 말에 나는 가차 없이 얼굴을 찌푸렸다.
여란 가가 이능을 잃었다는 소식이 그리 유명하지 않거나, 저 놈이 좀 심각한 바보인 것 같은데.
진서 여란이 기윤의 둘째이기는 했 다.
하지만 그들은 척박한 무인도로 유 배를 갔고, 설령 맞다고 해도 이능 한 톨 없는 양반이 뭐가 무서워.
그리고 무엇보다, 여란 가의 자제 라는 그 말은 저 남자가 스스로 무 덤을 파는 꼴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거의 없어졌다. 멈춰 설 때가 머지않았다는 의미였
다.
“그대가 진정 진서 여란이 맞소?” 그래도 죽이는 건 좀 그렇지.
나는 기회를 한 번 더 줄 생각으 로 그렇게 물었고, 그는 망설임 없 이 그렇다고 답했다.
기윤은 처형당했지만, 여란 가의 가솔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유배 를 갔다.
그건 매우, 아주 몹시 관대한 처분 이었다. 그리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 도 죄인이 유배지를 허가 없이 벗어 나는 것은 중죄였다.
얼굴을 안 보여 주는 걸 보니 사 칭인 것 같기는 하다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진서-우선 은 본인이 그렇게 말했으니-가 멈 춰 섰다. 그리고 등 뒤에 겨눠진 칼 이 옷감을 조금 더 베었다. “가지고 있던 그 주머니를 내내” 예상했던 말이었다. 험악한 말에 내 뒤에 있던 남자가 머뭇댔다.
“주머니만 내어 주면 아무 일도 없 을 것이오.”
그래. 그 말 안 해도 그렇게 될 거 긴 한데.
“안 내어 준다면?” “그럼 죽어야지.”
천진한 질문에 잔혹한 대답이 돌아 왔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소매에서 은자 가 든 주머니를 꺼내 머리 위로 올 렸다.
손이 가벼워지자마자 나는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갔고, 뒤에서 '으억'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뒤를 돌았고, 덩치에 비해 제 법 순박하게 생긴 남자가 당황스러 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
다.
그를 제압한 무복의 남자가 나를 보고 착잡한 얼굴을 했다.
“마마.”
“왔느냐?”
와, 진짜 혼내고 싶다는 얼굴. 상 전만 아니었으면 볼이라도 꼬집었을 것 같은 얼굴.
'근데 어쩌겠어. 내가 상전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여류의 무릎 아래 깔린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림자들 중 몇몇이 따라왔을 거라 고 예상하고 있었다. 엄마가 걸어 준 이능도 있으니 안전할 거라 확신
하고 있었고.
나를 쭉 따라다녔을 테니 이들이
-「曰口스 八지 으근 하고 있는지 다 보았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아 내가 손짓으로 만 류했기에 지금에서야 튀어나온 것뿐 이지.
그나마 존대라도 했던 남자는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떨고 있었 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 린 나는 제 동료와 똑같은 모습으로 잡혀 있는 진서를 보았다.
그를 붙들고 있는 노을에게 눈인사 를 한 뒤, 나는 다시 시선을 내렸 다.
이들은 참 여러 방식으로 제 무덤 을 팠다.
조용한 곳으로 온 것도 그렇고, 여 란 가의 핏줄이라고 말한 것도.
“간만입니다, 오라버니. 얼굴이 많 이 상하셨군요.”
나는 속으로 삼삼한 위로를 전하며 입을 열었다.
진서의 나이는 이제 막 성년이 된 열여덟 살이다. 남자는 좋게 보아도 서른은 넘어 보였다.
“헌데 어찌 감히 이러셨습니까.” 그렇지만 어찌 되었든 본인 입으로 진서라 말했으니 충분한 명분이다.
“멋대로 유배지를 벗어나질 않나, 감히 이 나라의 공주인 나를 협박하 질 않나••••
그리고 무언가 일을 치는 것은 그 명분 하나면 충분하지.
“이번에는 폐하의 자비에 기대는 것이 어려울 듯하군요.” 나는 방긋 웃으며 말을 맺었다.
자, 감옥 가자.
사람의 목숨은 소중하니 죽이는 건 안 되지.
그래도 이 자식들 진짜••• '황제도 안 때리는 애를 패?'
정확하게는 엄마가 고운을 때릴 이 유가 없었지만, 결과는 똑같으니 생 각할 필요 없는 일이었다.
기윤처럼 주먹으로라도 한 대 칠까 고민하던 나는 마음을 접었다.
고운이 많이 놀랐을 텐데. 몸을 돌린 나는 역시나 새하얗게 질린 고운과 눈이 마주쳤다.
많이 놀랐는지 고운은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 내게 시선을 못 떼는
눈동자가 불안정했다.
고운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이자 고 운이 움찔했다. 피식 웃던 나-1-1- 기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손이 닿은 곳이 축축했다.
식은땀이 이렇게나 많이 났나. 옷 을 적실 만큼?
손을 거둬들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손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비릿 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너, 피가 “으아아아!”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내 몸이 번 쩍 들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여류에게 안겨 고운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
다.
노을에게 붙들려 있던 진서는 일어 나 있었고, 고운도 그와 함께 있었
다.
“나, 날 보내 주시오!”
진서가 고운의 목에 칼을 가져다 댔다. 그걸 보자 발끝으로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여류도, 노을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 아무도 고운을 구하려 하지 않 지?
“여류, 어서!”
“마마. 고운은 아이이기 전에 그림 자입니다. 제 알아서 빠져나올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급하게 여류를 부르자 여류가 침 착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다.
“노을도 저자를 놓치지 않았느냐!”
“이능이 괴력이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고운처럼 정신을 뻬두고 사 는 것이겠지요.”
이를 으득 간 여류가 계속해서 말 이었다.
“도(刀)를 잡은 손이 서툽니다. 인 질을 붙잡은 품도 그리하고요. 고운 의 힘으로 충분히 떨질 수 있는 이 입니다.”
나는 그 말에도 여전히 불안했다. 그렇다면 고운이 왜 움직이지 않지? 여류도 그렇게 느꼈는지, 그가 비 력 소리쳤다.
“무엇 하러 꾸물거려. 어서 떨쳐 내!”
고운은 여류의 호령에도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시체 같은 안색을 한
채 손끝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그 0 0 011타게 바라보던 나는 무심 코 고개를 들어 진서를 바라보았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기가 컸다. 피부색이 어두웠고, 자색 머리카락 을 가지고 있었다.
'자책 매근/칼q// 기는 질 적이 고, 가느다란 실눈을 한 XhL//P/L/ 다'
고운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 이었다.
•••아니야.”
작게 중얼거린 말에 여류가 반문했 다.
힘이 없어 떨쳐내지 못한 것이 아 니었어.
“여류, 어서-
그걸 설명할 틈도 없어서, 나는 황 급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야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당황해 두리번거리는 사이 나를 붙 잡고 있던 손이 사라졌다.
“여류?” 그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대 신 회색빛의 무언가 탓에 흐릿해진 시야로 쓰러진 인간의 형체가 보였
다.
한 발짝을 떼려던 나는 작게 기침 했다. 후추를 들이마신 것처럼 코끝 이 매웠다.
무언가 흐르는 느낌에 코 밑에 손 을 대니 축축한 액체가 묻어났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소년의 형상이 가만히 서 있었다.
고운의 이능이구나.
맹독의 이능은 강력하지만 조절할 수 없다고 했다. 트라우마 탓에 억 누르던 이능이 터져 버린 거야.
엄마의 이능이 나를 지키고 있는데 도 내게 이만큼이나 타격이 왔다.
이대로 퍼지면 민가에 피해를 끼질 뿐더러, 고운도 위험했다.
이능에는 한계가 있다. 끝없이 소 진하게 둘 수 없어.
온몸이 무거웠지만 나는 발걸음을 떼었다. 1- 표己0 해쳐 나가는 기분이었 다.
황궁에 막 들어왔을 때, 방 안에 물이 들어차던 광경과 비슷했다. 하 지만 두렵지 않았다.
멀리 보이던 실루엣이 자자 가까워 졌다. 고운이 암울한 회색빛 세상
속에 홀로 서 있었다.
꼭 죽은 것만 같은 모습에 공포를 억누르며, 나는 고운을 붙들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고운의 눈동자 가 그 말에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하 지만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고운의 이마를 쓸고, 뺨을 이루만 졌다. 눈동자의 흔들림이 멎었다.
“괜찮아.”
그에 나는 웃어 주었다. 아이가 안 심할 수 있도록.
“고운, 괜찮아.” 너에게 口八El卍으 해야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반듯이 눈을 맞추고, 또박또박 입 을 움직였다.
“나 여기 있어.”
그 말에 고운이 눈을 한 번 깜빡 였다.
눈의 깜빡임이 점차 늘어나고, 이 내 고운의 눈이 스르록 감겼다.
고운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 무 게를 지탱할 수 없어 나는 고운과 함께 주저앉았다.
자자 독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완전한 파란 하늘이 보이는데, 초점
이 흐릿했다.
나 좀 데리러 와 줘.
그 작은 중얼거림이 내 마지막 기 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