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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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전에 들어가자마자 마주한 것은 엄마의 눈동자였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아챈 눈 빛이 아주 흉흉하다.
저대로 뒀다간 언령으로 당장 나를 동궁에 돌려보낼 것 같0갔다.
나는 엄마가 입을 열기 전에, 그리
고 대신들이 시끄러워지기 전에 선 수를 졌다. “서 대륙에 가겠습니다.”
“태자!” 엄마 화난 목소리 오랜만에 듣네.
나는 태연하게 생각하며 1- 근  움켜쥐었다.
나와 엄마의 대치에 눈치를 보던 대신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폐하. 태자 전하께서 저리 말씀하 지 않으십니까. 부디 허락해 주시옵 소서.”
“태자 전하께서 이리도 나라를 염 려하시니 나라의 홍복입니다.” 그래. 왜 못 오게 하나 했지.
대신들은 나를 서 대륙에 보내겠다 하고, 엄마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 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마땅한 명분이 없으니 쉬이 결판이 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데, 뭐. 내가 가겠다고 하니 별수 있나.
“어마마마. 부디 노여움을 푸세요.” 나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
다.
“응당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 해 해야 할 일이지요. 저들이 말하 는 것처럼, 저는 이 나라의 태자가 아닙니까.”
마지막 말에 힘을 싣자 한 박자 늦게 동조가 터져 나왔다.
나는 가만히 웃으며 그들과 하나하 나 눈을 맞췄고, 다시 입을 열었다.
“돌아가신 선조께서 황가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제가 태자인 것이 얼마나 서글프셨겠습니까. 이렇게라 도 나라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나긋하게 건넨 그 말에는 대신들의 입이 완전히 다물려졌다.
엄마는 이를 꽉 악물었다가, 대신  을 쏘아보았다가, 결국 한숨을 내 쉬었다.
•••그래. 그리하거라.”
생각보다 선선히 허락해 주네, 싶 있을 때, 엄마가 말을 이어 갔다.
“그리하면 사절단을 꾸려야겠지. 아무리 소국이라 할지라도 서라국에 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니 말이다.” 어, 잠깐만.
나는 엄마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내저었지만, 엄마의 눈이 흉흉했다.
“그대들 중 누가 태자와 동행할 것
이오?"
푹 찌르듯 들어온 엄마의 질문에 대전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럴 줄은 알았지만, 참•••  '못난 사람들  나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나보다 나이가 서른 살은 많은 사 람들이 참 너무하시네.
곧 죽어도 나를 보내겠다고 우리 엄마랑 싸워 놓고, 사절단에 갈 사 람을 묻자 하나같이 눈을 피한다.
“그대들이 말한 것처럼 나라의 국 운이 걸린 일인데, 어찌 막 성년이
된 태자 혼자만 보낼 수 있단 말이
오.”
“이리 많은 이들 중 단 한 사람도 태자를 따를 이는 없는 모양이군.”
엄마는 픽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맺었다.
그에 나는 조금 곤란해졌다.
이렇게 공을 세울 방법이 사라지는 건가?
•••마호 가의 가주께서 동행하시 는 것은 어떻습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한 대신이 입을
열었다.
나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내 심 얼굴이 밝아졌다.
매번 나한테 눈치 주던 대신인데, 지금만큼은 응원하고 싶었다.
싸워. 싸워서 이겨.
“마호 가는 대대로 이능을 연구해 왔으니 필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노대신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말하다 보니 이거다 싶었나 보지.
“마침 마호 가의 가주께서 태자 전 하와 함께 왔으니 그에게 확답을亡 으소서.”
그러나 그 말에 나는 의아해졌다.
같이 왔다고?
나는 뒤를 돌았지만, 내 뒤에 서 있는 것은 고운이 다였다.
슬쩍 주위를 둘러보0갔지만 내가 들 어온 뒤 또 다른 손님은 없었다.
이리저리 떠돌던 시선이 다시 고운 을 향했다.
•••누가 가주라고?
그 뒤로 어떻게 흘러7갔는지 잘 모 르겠다.
강연은 그렇게 파했지만, 무슨 특 별한 내용이 있었더라도 나는 기억 하지 못했을 것이 뻔했다.
고운이 제 가문의 가주가 되었다 고?
“전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퍼뜩 고 개를 들었다
화룡궁의 상궁이 나를 바라보고 있 었다.
“몸이 좋지 않으시면 다음에 찾아 뵙겠다고 전할까요?” 아, 맞아. 지금 내가 정신 빼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강연이 끝난 뒤 엄마는 나를 불렀 다.
내 마음대로 행동한 것에 대해 혼 날 시간이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으니 고하여 주시게.”
“예, 전하.”
상궁이 곧바로 내 방문을 고했고, 들어오라는 대답 또한 바로 들려왔
다.
문이 열리자 엄마의 매서운 눈초리 가 나를 향했고, 나는 해해 웃어 보 였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잖아.
“산아 아륜!”
“아, 왜요•••  나는 슬금슬금 엄마에게 다가가 눈 치를 살폈다.
“전 괜찮아요. 무사히 다녀온 것 보셨잖아요. 서 대륙이 무섭지도 않 고요."
“그래도 그렇지. 이리 어미 뒤통수

를 쳐!”
“말씀드리면 안 들어 주실 게 뻔해 서••
“그래서 몰래 한 것이니? 안 들어 줄 게 뻔하면 몰래 하면 되는 것이 야? 내가 너를 그리 가르쳤어?”
“아니요•••  오늘도 팩트가 살뜰하셔요, 어머니.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시 잖아요.
시무룩한 내 말에 엄마의 말문이 막혔다. 엄마는 입술을 국 깨물었다.
“네가 스스로를 희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희생이랄 것도 없다니까요. 그냥 여행이라 생각하는데요, 뭘.”
그거 다른 사람들이나 무섭지, 나 는 안 그렇다니까.
숙연한 분위기에 알차게 초를 치는 나를 엄마가 무표정으로 바라보았 다.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엄마가 내 양 뺨을 아프게 잡아당기 는 게 더 빨랐다.
“하여간에 어미 속 썩이는 데에는 도가 텄지. 이 똥강아지.”
“아, 아! 아미”
서 대륙 가기도 전에 딸 잡는다! 엄살이 아니라 진짜였지만 엄마는 한참 뒤에야 내 뺨을 놓아 주었다. 아픈 뺨을 문지르는 나를 착잡하게 바라보던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한 달이다. 반드시 한 달 안에 돌 아와야 해.”
“네게 이능을 아무리 넉넉하게 주 어도 한 달이 최대일 것이다. 그것 도 모자랄 수 있어.”
“그러니 최대한 빨리 일을 해결하 고, 가능하면 일찍 돌아오고. 아니, 그냥 일이 다 끝나지 않아도 돌아오 고 싶으면 돌아오거라.” 아이고, 잔소리.
귀를 막고 싶다는 생각으로 눈을 게슴츠레 뜨는데, 엄마가 한숨을 내 쉬며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마음 같아서는 따라가고 싶은
“엄마가 거길 왜 오세요? 나라를

지키셔야죠. 황제라는 분이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있 다. 그 즉시 방 안의 분위기가 싸늘해 졌다.
엄마는 빙그레 웃었고, 내게 두 손 을 뻗었다.
행동한 것은 엄마였지만,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엄마, 잠깐만- 악! 알았어, 잘못 했어요!”
잠시 뒤, 나는 얼얼한 뺨을 어루만 지며 방을 나섰다.
이 양반은 하루 종일 앉아서 서류 만 보면서 손힘이 왜 이렇게 세.
어느 정도 아픔이 가라앉아 고개를 들자 고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잠시 잊었던 경악스러움이 다시 떠올랐다.
“너 가주야?!”
소리치듯 물은 말에 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 예라고 했어, 지금?
“언제부터?”
“수도로 올라오기 직전 가주 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왜 말을 안 했어?” “알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내가 신이니. 그걸 어찌 알아!” “송구합니다.” 말하고도 트집에 가까운 말에도 고 운은 사과했다.
그 순순한 태도에 무안해진 건 나 라서,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럼 내 곁에 있어도 되는 거야?” 한 가문의 가주라면 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아니, 무엇보다 고작 내 호위나 하 고 있을 상황이 아닌 거잖아.
하지만 그런 내 말에 고운은 의아 하다는 얼굴을 했다.
“어째서요?”
“어째서라니. 당연히 네가 마호 가 의 가주이니까•••
“전하의 곁에 있기 위해 떠나 있었 던 것입니다.”
말끝을 흐리는 내 대답에 고운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가주 위 또한 권력이 있다면 전하 께서 조금 더 쓰시기 편하겠다 생각 하였을 뿐, 그리 대단한 책임감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전하의 곁에 머물지 못한다면 그 무엇도 제겐 소용이 없는데, 어찌 전하를 떠나겠습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잠시 우리 둘 사이에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몇 번 입을 뻐끔대다가 간신 히 입을 열었다.
“그런 말을•••••• 잘도.”
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를 고운은 잘도 알아들었다.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그렇게 묻는 얼굴이 참 무심하고 말갛다.
나는 한참을 목 졸린 사람처럼 서 있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잠시 나가 줄래? 혼자 할 일 이 있어.”
내 축객령에 고운은 두말없이 고개 를 숙이고는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발걸음 소리가 몇 번 나자마자 나는 땅이 꺼져라 숨을 내 쉬었다.
고운이 했던 말이 내내 귓가에 환 청처럼 맴돌고 있었다.
모양 좋게 움직이던 붉은 입술과 툭 튀어나온 목젖. 짙게 그림자를 만들던 눈썹이 다시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한 번 물꼬를 튼 생각은 지질 줄 모르고 뻗어 나7갔다. 넘어질 뻔한 내 등을 받진 손. 가 까이 보이던 눈동자.
또 보자는 말에 휘날리는 휘장 사 이로 가만히 웃던 입술.
그리고 다시, 방금 전의 일.
'전하의 결이/ 매물又/ 못한다면 그 무엇도又//겐 조용이 업는데, 어째 전하를 때나겠습L/까. '
느릿하고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속 삭이는 것 같았다.
눈동자까지 열이 오르고 귓가에 북 소리가 들린다.
아, 세상에.
나 고운한테 설레나 봐.
그걸 자각한 순간, 나는 고개를 뒤
로 젖혔다.
그리고 그대로 앞으로 박았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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