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화

1 0 0
                                    


물론 이번 일로 적어도 이 주일은 꼴도 보기 싫어지긴 했다.
하지만 평생 얼굴을 보고 싶지 않 은 건 아니었다.
사과만 한다면•••
'아니, 사과하려나?'
의심이 이어지려던 생각에 발을 걸 있다. 음.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하겠는데.' 요새 하는 모양새를 보면 얼마든지 할 것 같지.
막말로, 동네방네 낯부끄럽게 사과 해서 나를 다시 화나게 할 가능성이 사과하지 않을 가능성보다 컸다.
그러나 고운은 내 말이 퍽 당혹스 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이 나는 더 당황스러웠다.
“왜 아닐 거라 생각했니?” 내가 그렇게 너그럽지 못한 상전이
웬만해선 다 참고 넘겼던 것 같은 데. 특히 고운에게는 더더욱.
내 질문에 고운은 망설임 없이 답 했다.
“크게 화나셨으니까요.” 아닙니까? 하고 되묻는 말에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헌데 그렇게나 쉽게 마음을 풀어 주십니까?” 고운이 정말 의아하다는 듯이 물있 다.
나는 그에 머쓱하게 볼을 긁었다.
, 어디부터 말해야 할까. “고운. 나는 쉽게 넘어가 주는 게 아니야.” 고운의 이마에 미미하게 파여 있던 골이 더욱 진해졌다. 이해가 안 된 다는 얼굴이었다.
“왜냐면, 용서를 비는 건 쉬운 일
이 아니거든  잘못임을 알면서도 저지르는 사람 들은 많지 않다.
반대로 말하자면 자신이 잘못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었 다.
내 잘못을 알아채는 것은 수없는 성찰과 반성을 필요로 한다.
또한 그 과정을 통해 잘못임을 알 았다고 하더라도, 제가 저지른 일을 사과하는 건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하 고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내 분노였다 하더라도, 미숙한 어린아이의 분노 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제 행동을 돌아보는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 이유로, 나는 미리내와 가람, 그리고 궁녀들이 사과한다면 받아줄 생각이다.
물론 세상에는 용서를 빈다고 될 일이 아닌 큰 잘못도 있지만, 적어 도 그건 이번 일은 아니었다.
날 죽이려 한 것도 아닌데 뭐.
사람은 얼마든지 변한다. 그걸 내 눈으로 확인했다면 되었다.
물론 미리내는 용이지만••• • 사소 한 건 넘어가도록 하자.
내 설명에도 고운은 여전히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표정이 많이 다양해졌
나는 웃으며 1- 뻗어 고운의 미 간을 꾹꾹 눌러 주었다.
“물론 나도 감정이 가라앉을 시간 이 필요하기는 해.
어쨌든 기분이 상한 건 맞으니 지 금 당장 사과한다면 받아 주기 이려 을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아마 그 부분은•••  나는 말끝을 흐리며 어깨를 으쓱했
다. “알아서 해결될걸?”
음, 역시나.
나는 유독 고요한 궁 안을 둘러보 며 생각했다.
역시 바로 내게 찾아와 매달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궁녀들은 어느 정도의 눈치와 정보 력이 있었고, 미리내는 똑똑했으며 가람은•••••• 아마 주변인이 말렸을
미리내와 가람은 내 궁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0갔고, 궁녀들은 내 눈치를 보며 제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편했던 다른 사람들도 함께 발걸음을 끊었다. 시끄러운 게 싫었던 건 아니지만, 한 번쯤 이렇게 쉬이 갈 필요도 있
이제 눈치는 좀 덜 보게 됐다고 하더라도 다들 씩 편한 사이는 아니 었다.
아니, 편한 사이라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귀찮게 굴면 피곤할 수 밖에 없다.
거리를 둔 건 내 화를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었는데, 뜻밖의 장점이었
다.
하여간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났 고, 나는 이제 완전히 괜찮아진 뒤 였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이제 내 게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들은 '좀 화가 났었지' 정도로 지부할 수 있 게 된 것이다.
그러니 슬슬 다시 시끄러워져도 될 것 같지?
태평하게 궁 안을 산책하던 나는 뒤를 돌0갔다.
나는 본래 고운만 데리고 다니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서연을 제외한 궁녀들을 모두 데려왔다.
출발하기 전 서연이 옅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한 것을 보아 서연은 이미 눈치를 잰 것 같았다.
희사를 포함한 다른 궁녀들이 입도 뻥긋 못한 채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 는 걸 보니 눈치챈 건 서연뿐인 듯 싶지만.
“너희들  조용히 그들을 부르자 저 끝에 서 있던 희사가 움찔 어깨를 떠는 게 보였다.
“예, 마마.”
친근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궁녀  =은 나를 상전 대하듯 깍듯이 대하 고 있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잠시 고민하던 나는 가장 앞에 서 있던 궁녀, 천유에게 다가7갔다.
고개를 숙인 탓에 일굴이 보이지 않아 나는 무릎을 꿇고는 위를 올려 다보았다.
놀란 얼굴이 보인다. 나는 빙긋 웃 었다.
“반성 많이 했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유의 눈동자가 커진다. 뺨에 톡, 떨어지는 물방울에 나는 작게 인상을 찡그렸
다. “네에흐으  잠깐만. 울어?
미처 피하지 못해 내 얼굴 위로 눈물 몇 방울이 더 떨어졌다. 그러 나 나는 내 뺨이 젖어가는 것을 신 경 쓸 겨를도 없이 당황했다.
전유가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희사보다는 서연을 많이 닮은 궁녀 였다. 방정맞은 궁녀가 있으면 조용 히 타이르는 사람이 전유였다.
그런데 내 말 한마디에 울고 있는 걸 보니 괜히 미안하다.
“죄송합니다. 마마께서 어떤, 혹.
벌을 내리셔도, 흐윽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천유가 제 옷 소매로 내 뺨의  물을 살살 찍어 내며 말했다. 중간 중간 울음이 섞이는데도 목소리가 또렷했다.
“희사 저 간악한 것의 계략에 속아
넘어가•••
“야! 마마! 아, 아닙니다!” 궁녀들의 맨 끝줄에 있는지도 모르 게 서 있던 희사가 핵 튀어나왔다.
역시나 희사의 얼굴에도 눈물이 줄 줄 흐르고 있었다. 희사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궁녀들 모두 울고 있었다.
아주 펑펑 우는 사람도 있었고, 눈 가가 붉어진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많이 노하신 것을 압니다. 죽을죄 를 지었습니다. 허나 다른 궁으로 보내지는 말아 주세요.”
“세답방이라도 상관없으니 이곳에 남고 싶습니다•••
훌쩍. 혹. 코 들이마시는 소리와 눈물 참는 소리가 온 복도를 울린
다.
내가 못 살아•••
“이리, 이리 오거라.” 나는 궁녀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그들이 펭권 무리처럼 나를 우르르 둘러쌌다.
우물 안에 갇힌 기분이라 또다시 앉으라 손짓하자 궁녀들이 훌쩍거리 면서도 쪼그려 앉았다.
“보내지 않을 것이니 이만 뚝 그지 거라. 어찌 낯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밖에서 이리 울어.” 나는 두루두루 궁녀들을 토닥이며 달랬다. 그러자 희사가 허엉,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가 주위의 동료들에 게 입을 틀어막혔다.
그러고는 내 눈치를 슬슬 보기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가 내게 진근하게 대하는 것 은 괜찮아. 아니, 오히려 좋다.”
“그렇지만 내 말을 무시하지는 말
아라.” 신경 써 주는 건 고맙지만, 응? 무 슨 말인지 알겠지?
“예, 마마.”
“명심하겠습니다."
궁녀들이 결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웃으며 그들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궁녀들이 눈물을 닦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났다.
희사가 자연스레 내 뒤에 서자 천 유가 그 에를 째려보는 것이 보였 다.
“어찌 네가 여기 있어? 뒤로 가
라.”
“원래 내가 가장 마마를 지근거리 에서 모시는 걸 모르니? 네가 가!” 나는 그걸 가만히 보다가 모르는 적 뒤를 돌아 걸었다.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야.
그리고, 또 다른 해결해야 할 일도 남은 것 같고.
그리 멀지 않은 복도의 끝. 화사한 햇살 사이로 두 사람분의 그림자가 보였다.
“오셨는데 어찌 부르시지 않고요.” 조용한 내 부름에 투닥대던 궁녀들 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멈칫한 그림 자들이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안녕.
•••그간 평안하였니?" 별일이네. 둘이 같이 오고.
“객이 오셨으니 맞이할 준비를 해
야지.” 내 말에 궁녀들이 일사불란히 움직 였다. 나는 멋쩍어하는 그들을 데리 고 근처의 방으로 들어7갔다.
궁녀들은 금세 다과상을 들였지만, 침묵은 좀 더 오래 지속되었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아 하나?
“사과•••  “미안하다!” 안 그래도 됐군.
내 말을 동강 잘라 먹은 가람이 패기롭게 고개를 숙이다 말고 의아 하게 다시 들었다.
“사과? 먹고 싶으나?” “아니요. 하시던 말씀 마저 하세
“아니, 사과를 당장•••  “괜찮습니다.”
그래도 제법 반성한 게 있는지, 가 람은 괜찮다는 내 말 한 마디에 쭈 그러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람은 줄줄 사과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내 감정에 치우쳐 네 말을 들어주지 못했다. 헌데 내가 어리석 어 나중에 가서야 네가 기분이 상했 다는 것을 알았구나. 앞으로 이런  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또 네가 바라지도 않은 것을 줄줄이 늘 이놓은 것도 미안하다. 앞으로는 네 게 꼭 묻고•••  어디 대본이라도 썼나.
적당히 원하는 내용을 들은 나는 그가 말을 끝낼 때까지 한 귀로 듣 고 한 귀로 홀렸다.
“저야말로 마마께 불손히 대한 것 이 아닌가 후회했습니다. 늦었지만 사죄드립니다, 마마." “아니다! 그건 네가 얼마든지 “미안하구나, 산아.” 오, 나이스 타이밍.

또 저 긴말들을 들이아 하나 고민 했는데, 미리내가 적절하게 끊고 들 어왔다.
방에 들어온 뒤 그는 웬일로 안대 를 풀고 있었다. 예쁜 하늘색 눈동 자가 축 처져 있었다.
“네 입장을 조금 더 고려했어야 했 는데, 내가 생각이 짧았다.”
“충분히 반성했으니, 부디 받아 주 겠니?” 군더더기 없는 사과다. 더 화를 낼 생각도 없었으니 안 받아 주는 것도 이상하고.
궁녀들과는 달리 이들을 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상 황이 나쁘지 않았다.
“그럼요.” 간만에 진심이다. 나는 옅게 웃었 다.
그러자 둘의 얼굴이 화악 풀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정말 다행이라느니, 폐하께서도 기 뻐하실 거라느니 떠들기 시작하는 가람의 모습에 나는 적당히 대답하 며 픽 웃었다.
새삼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 사달 이 난 게 우스웠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나는 정말로 필요한 게 없어서 그랬을 뿐인데.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반드시 필 요한 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가져야 하는 편이고 말이다.
아직 그것까진 모르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며 나는 웃었다.
얼마 뒤, 내가 감자 포대를 갖겠다 고 사신들 앞에 뛰어들 미래는 아무 도 모른 채로, 그저 화목한 날이었
다. 

17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