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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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공손 히 대답했더니, 황제의 얼굴이 꽃이 움트듯 환해졌다.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녀는 의자를 가져다가 내 침상의 옆에 앉았다.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은은한 미소 가 매달려 있었다.
아까 가람은 혼자서 지지고 볶느라 바빴는데, 황제는 조용히 나를 지켜 보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가장 고귀한 자로 자라 온 반증인지, 그녀는 확실히 수직 관계에 익숙했다.
그러니까 내가 입을 열어서 떠들어 아 한다는 말이다.
“보내 주신 선물을 잘 받았습니다. 황은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우선 가장 정석적인 말을 끼 냈다.
몸이 아파 이리 인사드릴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원래대로라면 하사한 것에 대해 정 식으로 인사를 하러 가아 하지만, 나는 굳이 이 안락한 공간을 나가기 싫었다.
내 말에 황제가 미안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급히 준비하느라 물7년들의 질이 많이 떨어지더구나. 조금만 기다리 면 더 좋은 것으로 마련해 주마.”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질이 떨어지는 물건이라고?
아무래도 황제는 평생 황궁 안에서 만 살아서 안목이 떨어진 것이 분명 하다.
보내 준 물71-니들이 질이 떨어진다면 대체 어느 것이 완벽하다 칭할 수 있겠는가.
나도 몰래 열이 올라 따지던 나는 그녀가 뒤에 덧붙였던 말을 그제야 상기시겼다.
•••또 보대?
“선물을 보내 주시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나, 제 누추한 궁이 고귀한 선물들을 담기에는 먹잡니다.” 나는 침착하게 그녀의 말을 막0갔
다.
다시 한 번 나의 제1 목표를 상기 시키자면 황제의 눈에 띄지 않는 것 이다.
백 번 양보해서 가람의 눈에 띄어 도 되고 미리내의 눈에 띄어도 되고 심지어 기윤 여란의 눈에 띄어도 되
지만 황제만은 안 됐다.
그 길은 잘 닦아 아스팔트까지 깔 아 둔, 죽음으로 가는 고속도로였다. 지금 당장은 가람이 내게 호의를 보내는 것 같지만, 그 얄팍한 호의 는 황제가 나를 쟁기는 관심이 그에 게 향하는 것보다 많아지면 단번에 바뀔 것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나는 어떤 형태 의 죽음도 사양이었다.
내 결연한 눈빛에 황제가 깨달은 얼굴을 했다.
“아, 그래. 궁이 작긴 하구나.” 나는 무언가를 뱉을 뻔한 입을 꾹 눌렀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황제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 지만 일단 내게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닐 것 같았다.
“알겠다. 조치해 주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부디 그 조지가 나를 찾아오 지 않는 것임을 바라며 시선을 아래 로 내렸다. 그러자, 황제가 내게 조심스레 손 을 뻗었다.
검을 잡아 투박해진 손이 이마와 머리에 쓸듯이 지나7갔다.
“열은 없구나.” 당연했다. 지금까지 아팠다면 벌써 백치가 되어도 열 번은 되었을 테니 말이다.
어린아이들은 고열에 오래 시달리 면 위험했다.
내가 밤에 열이 나 깨어났을 때 이렇게까지 오래 갈 줄 알았더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궁인들을 깨웠 을 것이다.
황제는 백지가 되어 미쳐 비린 후 궁을 황궁에 두지 않을 것이고, 사 가로 쫓겨 간다고 해도 백지가 된 천덕꾸러기의 취급은 뻔했다.
아니지. 오히려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며 기윤 여란이 무슨 짓을 할 지 몰랐다.
새삼 생각하니 오싹해져 팔에 돋은 닭살을 쓰다듬는데, 황제가 조용히 물었다.
“원래도 악몽을 많이 꾸느냐?” 나는 그 말에 눈을 두어 번 깜빡 였다.
악몽이라니, 어제 눈앞에서 원숭이 의 눈알과 마주했던 것을 빼고는 없 었다.
원래의 산야라면 악몽을 밥 먹듯이 꾸었겠지만, 나는 그 과거를 겪지 않았다.
산아가 얼마나 끔찍하게 살았는지 알지만, 내가 산아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은 모두 원작으로 읽은 것뿐 이었다.
책으로 아무리 몰입해서 읽는다 해 도 그것으로 악몽을 꿀 리가.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려다 멈칫했 다.
황제가 나에게 악몽을 '원래' 많이 꾸냐고 물었다.
이 말은 내가 악몽을 꾸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말이었다.
기억을 뒤지던 나는 내가 아팠던 날 황제가 찾아왔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가라고 목을 쥐어짰던 것도.
•••예. 부족하나마 그러합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긍정했 다.
황제에게 반말에, 명령에, 고루고루 목 잘릴 짓을 했구나.
그녀가 내가 악몽을 꾸고 있는 것 이라고 알아들어서 다행이다.
나는 처음으로 황제의 눈치 없음에 감사했다.
황제는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일 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측은함과 죄책감, 그리고도 여러 가지가 섞여 혼탁한 얼굴을 나는 가 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었다.
•••악몽을 꿀 것 같은 날이면 나 를 찾아오거라.”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내 발로 황제의 침실에 들어 가는 날은 아마 내가 반쯤 돌아 비 린 날이 아닐까.
“황은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하품하지 않으 려 애썼다.
몸이 어리니 낮잠을 꼬박꼬박 자야 하는지, 영 졸렸다.
아까는 노곤한 상태에서 낮잠이나 자 볼까, 하는 상태였다면, 지금은 눈꺼풀이 정말로 무거웠다.
내 눈에 졸음이 그득한 것을 눈치 챈 황제가 나를 눕혔다.
나는 이불을 꼼꼼히 덮어 주는 손 길에 눈을 도르록 굴렸다.
황제에게 이런 대우를 받은 걸 후 궁들이 안다면 아마 날 죽이려 들지 않을까.
“잠들어도 떠나지 않을 테니 걱정 말거라.”
황제는 내 눈의 움직임이 악몽을 무서워하는 아이인 줄 알았는지, 그 렇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냥 빨리 갔으면 좋겠지만 나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바쁜 황제가 내가 깨어날 때까지 있을 리가.
나는 안심하며 금세 잠들었고, 역 시나 내가 깨어났을 때에는 황제가 없었다.
다만 내 머리맡에는 자그마한 주머 니가 하나 놓여 있었다.
누가 보아도 황제가 두고 간 것이 분명한 그 주머니를 나는 작잡한 눈 으로 바라보았다.
굳이 따로 주고 갈 이유가 뭐였을 까?
대단한 걸 주지는 않았겠지만, 그 래도 의심부터 하게 되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주머니의 입구를 묶고 있던 끈을 끌렀고, 잠 시 동안 말문이 막혔다.
그 안에는 아몬드 구기가 들어 있 었다.
서대륙에서 가져오기 가장 힘든 음  식은 사실상 신선한 과일과 음식이 었다.
넓은 바다를 지나며 대부분 상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황제에게도 진상될까 말까 한 음식 인데.
“굳이 찾아서 주고 갔네.” 나는 불편함으로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무작정 보낸 선물은 별생각이 없었 지만, 마음이 담겼다는 게 보이는 선물은 조금 곤란했다.
“별거 아니었겠지.” 내 목소리가 내가 듣기에도 어두웠
다.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그건 어느 평화로운 오후에 전유가 대문을 넘어 정원에 앉아 있었던 내 게 다가오며 한 말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대부분 무표정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었지 만, 내 옆에 서 있던 희사가 탄성을 내질렀다.
드디어 가네요!”
•••무슨 소리야.”
나는 그녀의 말에 의문을 제기했
다.
준비가 다 끝났고, 드디어 간다니.
어딜?
희사는 내 말에 씨익 웃었다. 그녀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미소였다. “마마께는 비밀이에요!”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서연에게 고 개를 돌렸다.
하지만 서연도 내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내 곁에 서 있던 모든 궁녀들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나에게 말 못 할 이야기가 뭐지?
나는 홀로 열심히 생각했고, 기관 사가 없는 기관차가 대부분 그렇듯 안 좋은 곳으로 흘러갔다. “나 죽어?”
“예? 무슨 말씀이세요!” 황망하게 중얼거린 말에 희사가 필 쩍 뛰었다.
그녀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내게 우 다다 쏘아붙였다.
“죽다니요! 마마께서 왜 돌아가서 요! 이건 그냥 마마의- 읍! 으으
•••••하하.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 다. 마마.”
희사의 입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 리기 전에 재빨리 달려온 유선이 어 설프게 웃으며 그녀의 입을 막았다.
희사는 눈을 부릅떴지만 유선은 아 무렇지도 않게 희사를 끌고 갔다.
뭐야. 원데?
“마마. 송구하옵니다만, 제게 안기 시겠습니까.” 서연이 조용히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자 서연은 양 팔을 벌린 채 내게 2' 1- 으근 뻗고 있었 다.
본인도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얼굴 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네. 어디를 가는지는 모르지 만 내가 걸어갈 수 있어.”
121-11
나는 재자 들려온 애처로운 목소리 에 움찔했다.
서연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선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나는 결국 팔을 벌려 그녀의 품에 안겼다. “눈을 감아 주시겠습니까.” 서연의 몸은 생각보다 딱딱했다.
내가 두어 번 뒤적이는데, 서연이 말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 며 눈을 감0갔다.
나쁜 소식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생활하며 그녀들과 정 이 꽤나 들은 터라, 나에게 해를 끼 질 만한 일을 할 것이라고 잘 상상 되지 않았다.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작게 한숨을 쉬는 사이 서연 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걸어갔다가, 오른쪽으로 꺾 고. 이번엔 왼쪽, 음•••
두어 번 방향을 세던 내가 결국 포기했을 때, 서연이 멈춰 서고는 나를 내려 주었다. “이제 눈을 떠 주시겠습니까.” “그래. 대체 무  짓이나. 하고 말하려던 나는 눈 앞 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화서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크고 화려한 궁이었다.
전각의 화려함은 말할 것도 없었 고, 어렴풋이 보이는 정원에는 연못 이 딸려 있었다.
동양의 정원 같지 않게 화려한 기 화요초들도 가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상자를 나르고 있는 환관들이었다.
“놀라셨죠!” 희사가 개구진 목소리로 소리졌다.
나는 그 말에 뒷골이 불길한 예감으 로 당기는 것을 눈치챘다.
•••이곳이 어디나?”
“화선궁이에요! 전대 귀비 마마의 궁이셨고, 이제 마마의 궁이지요!” 기어이 확인 사살을 당했다.
빼도 박도 못하게 황제의 총애를 받은 후궁이 된 것이다.
동시에, 얼마 전 찾아왔던 황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아, 그래. 구이 작긴 작구나.
그때 황제에게 확실히 말했어야 했
다.
그건 궁을 바꾸어 달라는 게 아니 라 선물을 보내지 말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언제 해도 늦고, 나 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궁이 늘어나 버렸다.
개수가 늘어났다는 의미도, 크기가 늘어났다는 의미도 맞았다. 둘 다 늘어났다.
나는 이제 내게 주어진 휘황찬란한 전각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깜짝 놀라게 해 드리고 싶었어요. 기쁘시죠?” 희사의 발랄한 말에 나는 우는 듯 웃는 얼굴을 했다.
아나. 전혀 달갑지 않아.
후궁들은 황제의 사랑을 매번 질투 하여 서로 죽어라 싸워 댔고, 아무 힘이 없는 내가 그 싸움에 끼어들어 이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지유의 힘을 가진 미리내가 무서운 만큼 다른 후궁들도 정말 강했다.
대표적으로 가람이 그러하듯 말이
다.
그리고 그와 정말 대조되는 힘을 가진 사람이 하나 있지.
갑자기 떠오른 그에 대한 생각에 나는 미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사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건 그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당히 숨죽여 사는 편이
니,
•••괜찮으려나.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늘 들어맞는 다고 했던가.
나는 영 등 뒤가 서늘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밤이 고비였다.
황제와 미리내 탓에 궁에 있는 짐 이 꽤나 많았는데, 그것들까지 모두 옮겨져 있었다.
나만 오늘 안 것이지 다른 이들은 훨씬 더 먼저 알았다는 말이 된다.
지금까지는 설마, 정말 그렇겠어.
하고 기다려 왔던 후궁들이 날뛸 자 례가 아닌가?
그리고 재자 말하지만 나에게는 아 무런 힘이 없었다.
원작의 산야에게는 그나마 기름칠 한 입과 똑똑한 머리라도 있었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거라곤 아름다운 얼굴뿐이있 지만 이걸 어디에 쓰겠는가. 살수에게 살려 달라고 일굴 들이밀 어도 바뀌는 건 없다.
결국 나는 나를 지켜 줄 사람을 찾아야만 했고, 자동적으로 한 사람 의 얼굴이 떠올랐다.
•••황제한테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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